메신저를 켜놓고 있는데, 캐나다로 떠나신 양팀장님이 들어 오셨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번 안들어오던 메신저에 웬 일이래. 암튼 무지 반가왔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면 양팀장님은 한국지부에서 오랫동안 자원관리팀의 팀장으로 일해 오시다가, 먼저 캐나다로 이민간 남편을 따라 얼마 전에 한국을 떠나셨습니다. 이 닭살 커플이 서로 떨어져서 산 것은 참 힘든 일이었을테지만, 앰네스티를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하다가 이제야 가시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권단체에서 활동한다고 하면 모두 인권현장에서 뛰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위험과 희생을 무릅쓰고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해 활약하는 이들을 상상하면서 존경을 보내기도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 칼을 잡고 있으면 음식점이 제대로 운영될리 없고, 가르칠 선생님만 있다고 해서 학교가 운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 주어야만 하나의 조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음식 주문받는 사람도 필요하고, 고장난 전등을 갈아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들이 없이는 결코 제대로 된 음식점도, 학교도 없을 것입니다.
인권단체도 그렇지요. 앰프를 구해오고, 테이블을 들고오고, 서명용지를 만드는 사람들 없이 거리 캠페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원을 활동의 중심으로 놓고 있는 앰네스티는 더욱 그러합니다. 8,000명 회원들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 이것은 앰네스티 사무국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러다보니 회원보다는 전업활동가가 중심인 다른 인권단체에 비해 더욱 지원업무의 비중도 높고 양도 많습니다.
양팀장님께서 하시던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지요. 회계업무와 총무업무를 비롯해서 사무국은 물론 한국지부의 수발을 들어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인권단체에 와서 영수증 챙기고 회계장부 작성하고 온갖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 어쩌면 인권현장에서 뛰는 것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작년 말, 8,000명에 가까운 회원들에게 일일이 세금공제관련서류를 만들어주느라 사무국이 마비상태에 빠졌을 때도 양팀장님은 그 업무의 중심에 서계셨습니다.
그렇다고 인권활동에 관심이 덜하신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양팀장님은 앰네스티에 합류하시기 오래 전부터 인권활동을 해오신 분이고, 앰네스티에서도 업무 외에 틈틈이 우리의 캠페인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기에 앰네스티가 움직이고, 전세계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일들이야말로 고귀한 인권활동이고 누구못지 않게 존경받아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양팀장님의 근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MSN을 통해 오간 대화를 공개합니다. 공개된 대화는 제가 마구 짜깁기하고 일부만 발췌한 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양팀장님의 로그인을 포착한 제가 바로 글을 날렸지요.
GoEuntae 님의 말: 모얌.... 캐너더?
계숙 님의 말: 네, 깜짝 놀랬어요
GoEuntae 님의 말: 우왕 용케 잘 가셨네.... 축하축하
계숙 님의 말: 네, ㅋㅋ, 벌써 일주일도 지났는데요
GoEuntae 님의 말: 남편이랑 있으니깐 넘 좋으시겠당.
계숙 님의 말: 당근
GoEuntae 님의 말: 살만해요?
계숙 님의 말: 완전 신혼이에요
GoEuntae 님의 말: 오호 그렇겠당.
계숙 님의 말: 신혼여행 온 기분
GoEuntae 님의 말: 마자마자, 히야... 부럽슴
계숙 님의 말: 네 진짜 좋아요, 특히 백수라서 더
안그래도 닭살 커플인 두 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봐도 뻔합니다. 질투가 나려고 하네요. 하하하. 이후로 대화가 계속되었는데, 행복하신듯 싶었습니다. 떠나실 때 환송회도 마다하셔서 참 섭섭했는데, 다음에 한국 들어오시면 맛난 것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양팀장님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은 기대하면서 기다리셔도 좋겠습니다.
한국지부의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하시고, 이제 좀 나아질까 하는 순간에 떠나버리신 양팀장님. 회원으로서 늘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힘든 순간에도 끝까지 앰네스티와 한국지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권을 위해 애쓰신 양팀장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양팀장님, 마지막까지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해 미안합니다. 늘 감사했고,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마왔습니다. 캐나다에서 꼭 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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