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는 휴식이 좋다는 댓글을 보고 무려 나흘 동안 대책 없이 쉬었습니다. 부작용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것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것 - 너무 오래 누워서 소설을 읽었더니만 - 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울증은 상당히 극복이 되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계속 우울한 것 보다는 일이 쌓여도 일단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휴식을 가지면서 적절한 휴식이 단순히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정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고, 왜 휴식권이 세계인권선언이 보장하는 인권 중의 하나로 명시되어 있는지도 깨달은 듯 합니다. 휴식은 사치가 아니라 인간생존의 필수적 조건이로군요.
휴식하면서 제 우울증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주 웃기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건설업체에 대한 9조 2천 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보고나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는 전혀 입증할 수 없고, 다만 시기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겁니다. 이거 도대체 뭡니까? 사실 우울증은 지난 5월 말 부터 조금씩 악화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제 직업이라는 것이 건설업계가 망해가면 당연히 간접적으로나마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정부의 건설업 지원책을 제가 개인적으로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9조 2천 억원이 얼마나 큰 돈입니까. 최하위 100만 가구에 920만원 씩 나누어 줄 수 있는 돈입니다. 아마 별거 별거 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돈을 무상의료나 무상교육 따위에 사용하면 빨갱이가 되고, 건설업체 살리는데 사용하면 자본주의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행동이 됩니까? 둘 다 시장경제를 벗어나기는 마찬가지인데요. 어차피 반시장적 정책이라도 가난한 사람을 위하면 빨갱이고, 부자나 기업주를 위해 쓰면 자본주의적인 건가요? 결국 이 땅에서 자본주의라는 것이 자본가주의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입니까?
저는 건설업체들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할 것은 자연히 망하게 하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한 조치 정도를 정부가 취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건설업체를 지속시켜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 년 이상 존재하는 모든 업무는 정규직으로 무조건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는 계약직을 쓰되, 정규직 임금의 최소 1.2배에서 1.5배를 주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래도 꼭 필요한 기업에게는 이익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정규직화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도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대학 시간강사의 임금을 지금의 3-5배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전임교수의 비율 따위는 자율로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판단해 주겠지요.
저는 주식이나 펀드가 아무리 폭락해도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들의 실패에 대해 시장이 보복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올바른 시장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쌀이 없으면 정부개입이 필요하지만, 돈 벌자고 투자한 증권이 휴지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가요?
저는 심지어 은행이 방만한 경영으로 무너져도 정부가 개입해서 살려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너지는 것은 무너지도록 놓아두되, 서민들의 예금은 정부가 보호해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댓가는 은행과 그 투자자들이 치뤄야지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되, 시장이 공급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공공재의 공급과 시장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할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만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공공재에는 교육과 의료의 일부분이 포함됩니다. (저희 동네에는 칼에 벤 상처를 치료해주는 1차 의료시설이 없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의료기관이 밀집한 동네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시장주의자일까요? 사회주의자일까요? 적어도 현 정부가 시장경제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체가 뭐죠? 저도 그렇고, 현 정부도 그렇고 말입니다.
여담: 지금처럼 연기금이 주식을 사들이다가는 조만간 대한민국 기업의 상당수를 정부가 소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생산수단의 상당부분이 사실상 국가의 통제 하에 있게되는 사회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갑자기 현 정부의 주식가격 떠받치기를 위한 주식 대량매집이 무언가 엄청난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아 혼자 실실 웃어보면서 오늘의 횡설수설을 마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