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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부이사장, 사무국장 회의

지부장 일기 2008/11/02 11:37 posted by 고은태
어제(2008년 11월 1일 토)는 부이사장님과 사무국장님께서 대전으로 내려오셔서 회의를 하면서 오후 시간을 모두 보냈습니다. 한국지부의 세 사람이 모였으니, 전세계 앰네스티의 움직임, 한국의 국내정세, 국내 시민단체의 동향과 위기국면, 국내 인권운동의 현 상황, 한국지부의 실태와 나아갈 바 등의 훌륭한 이야기도 당연히 오갔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쉬는 시간에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회의주제는 한국지부 재정문제였습니다.

이 날의 회의는 올해 초까지 제가 담당해오던 재정담당자(Treasurer)의 역할을 부이사장님께 넘기기로 하고 일종의 업무인수인계 및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자리였고, 더불어 몇 개월간 밀린 재정보고를 함께 살펴보면서 현 상황을 진단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굉장히 일상적인 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연합의 기사를 들은 후의 회의라 저로서는 뭐랄까 비장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앰네스티의 재정운영에 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이사회에 있습니다. 다른 업무의 대부분이 사무국장의 관할 하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좀 특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른 시민단체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사회가 매달 재정상황을 점검할 수도 없고, 이사회가 모여서 장부만 들여다 볼 수도 없는 일이라서 이사회의 일원인 재무담당관이 일차적인 점검과 보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재정담당관의 업무는 한국지부의 자산관리(라고 해봐야 은행통장 잔고확인 밖에 없지만), 월별 수입과 지줄을 확인하고 예산과 비교하여 의견을 제시(어떤 특이사항이 있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중대한 변화가 있으면 대안을 제시하기, 필요한 경우 이사회에 행동을 요청하기), 향후 몇 년간의 재정예측을 사무국장과 함께 유지, 업데이트하고 장기적 위험요소를 찾아내기(문제가 예상될 경우 위기를 예보하고 대응책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건의하기) 등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구멍가게 수준에 가까운 작은 재정임에도 불구하고 장부를 들여다보면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더구나 한국지부의 재정이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서, 장기예측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만저만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꽤 힘듭니다. 상당히 복잡한 경우들이 있거든요.

그러나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입니다. 뻔히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마른 수건 짜대듯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출이 왜 많아졌냐고 물을 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째서 수입이 예산만큼 달성되지 않았느냐고, 이래서는 장기적인 어려움에 처한다고 심각한 얼굴로 물어야 할 때, 보고내용을 정확하고 보기좋게 정리하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음에도 무언가 문제제기를 할 때, 묻는 사람 스스로도 상당한 심리적 저항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행히 사무국장님이나 회계담당자나 재정담당자의 역할을 잘 이해해주고 지원해주는 편입니다. 이해가 안가는 숫자가 하나 나오면 사무실을 들들 뒤져서라도 관련자료를 찾아다 줍니다. 저희 회계가 모두 컴퓨터화 되어 있어서 정확한 대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생기면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우리는 자산이랄게 없어서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만일 다른 나라 지부들처럼 적당한 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 자산을 증권이나 펀드 따위에 넣어서 운용하고 있었다면,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서 재정담당자는 자살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거지가 화재걱정 안하는 꼴이군요.)

그러나 가장 힘든 부분은, 모든 숫자가 다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장기예측 시뮬레이션 결과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나오는 경우입니다. 밝은 목소리로 "자, 우리는 2년 후에 돈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군요."라고 말하고 나면 저와 사무국장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할 말을 찾기 힘듭니다. 물론 그런다고 진짜 문닫을 일이야 없겠지만,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가 맘에 들지 않을 때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 년간 앰네스티의 재무구조는 매우 건전하게 변화했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일이 년 전에 장기예측이 보여주던 "3개월"이나 "6개월" 같은 식의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마음도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릅니다. 재정상황이 건강해지면 캠페인에 임하는 마음도 훨씬 여유있고 희망적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회원님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회의는 인수인계가 중심이라서 장부를 깊숙히 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재정담당 경력자의 눈으로 살펴본 한국지부의 재정상태는 그 어느 때 보다 희망적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계속 주의깊게 살피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최소한 회원들께 돈 없어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씀은 안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렇게 되는데 7년 내지 10년의 힘든 세월을 보냈군요. 그 동안은 정말 하루하루가 피말리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회원이든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돈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기껏 자기 인생의 일부를 희생해서 인권단체에 왔는데 거기서 하는 일이 장부를 들여다보면서 돈이나 따지고 있으라고 하면 누구든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할 일입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활동도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단체 뿐 아니라 시민들도 이 점에 더 주목하고 더 많은 투자와 참여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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