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생각 하나:

나는 지금도 김치를 잘 먹지 않는다. 그리고 내 어릴 적 기억 까마득한 어딘가에 내게 김치를 먹이려고 애쓰던 아버님의 모습이 있다.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윽박지르던 중학교 때 선도부의 모습이 있고, 협조하지 않는 학생들을 몽둥이로 때리던 반장의 모습이 있다. 고1때는 일부 학생들에게 강요된 보충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거부다하다 엉덩이를 맞았다. 우리 반 모든 학생들에게 '자율적' 야간학습을 강요하던 고3 담임선생님의 모습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권력관계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가르침을 받는다. 혹은 강요당한다. 술을 못먹는다고 정신적 부담을 느껴야 하고, 심지어는 맞서 싸워야 하며, 결혼준비를 할 때는 이에 대한 주위의 무지막지한 압력 속에서 내가 사회적 합의 아래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이야기한다. '이것이 옳은 길이다. 다 너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옳고 그른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을 한국사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문명사회라기 보다는 원시적 야만사회의 모습에 훨씬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매일 절망한다. 한 개인에게 무엇이 옳은 일인지 정해주어야 할 권리도, 의무도, 사회는 가지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개인은 옳은 일을, 더 정확히는 사회가 옳다고 정해놓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도 가진다. 이 간단한 이치를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국제중이 아닌 특수목적유치원을 10,000개쯤 만들어도 나는 반대하지 않겠다.

이길준의경에게 3년형이 구형되었다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무섭다. 그 새파란 젊음에게서 서슴없이 3년의 세월을 앗아가려는 국가권력을 응원하고 이길준의경을 조롱하는 댓글들은 너무 잔인하다. 그리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환상 따위는 가지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든, 사람이 살만한 국가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가야할 길은 너무나 멀다. 그 절망의 끝자락에 지금 이길준의경이 서있다.

생각 둘:

그 모든 권력의 정점에 국가가 서있으며 폭압의 극한화된 형태는 국방의 의무다. 거듭 말하지만 - 보나마나 그래도 못알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 이것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관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국가의 명령에 대해 어떤 이유로든 복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의 문제이다.

그들이 가진 그들만의 양심을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는지, 더 적극적으로는 얼마만큼 존중할 수 있는지가 바로 한 사회의 성숙도, 혹은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선진국의 징표이다. 돈으로 이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믿는 탐욕은 결국 천박함의 증거일 뿐이다. 천박한 선진사회? 무한경쟁의 도가니 속에서 한 푼의 욕망만이 생존의 의미라면, 당신들은 지옥에서나 참다운 행복을 얻을 것이다.

이길준의경이 앰네스티의 기준으로 양심수에 해당하게 될지 안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자세한 정보도 없고, 앞으로 판결이 어떻게 날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민들을 - 지휘자의 명령을 무시하고, 법률과 규정도 무시한 채 - 그야말로 두들겨 팬 전의경이 겨우 영창 5일을 가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양심을 고수했을 뿐인 이길준의경에게 3년형을 구형한 검사가 내뱉은 '법치주의'는 코미디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법집행을 희화화하고 모든 사법체계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만드는 자들이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적들은 국가주의의 망령을 내세워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을 파먹으려는 자들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국가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은,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내세워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자들이다.

결국, 성숙한 시민이 성숙한 사회를 만든다. 다른 사람의 - 자신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주는 사람들만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자격이 있다. 나름대로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출발선에 조차 서지 못한 주자의 기분으로 나는 한국사회의 내일을 내다보며 희망을 품고자 애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www.amnestydiary.net/trackback/11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torm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그럴 희망이 보이지 않네요

    2008/11/03 03:31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그래도 10년 전에 비하면 사회의 의식이 조금 너그러워지지 않았을까요?
      비록 그 속도가 너무 그려 고통스럽기는 합니다만...

      2008/11/03 12:33
  2. BlogIcon nooe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3년형을 받았군요. 마음이 아프네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음에 더 슬퍼지네요.

    2008/11/04 00:23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선고를 기다려 봐야 하겠습니다만...
      구형 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답답해 집니다.
      이쪽저쪽 공정하기만 하다면야 좀 과해도 그런가보다 하겠습니다만...

      2008/11/04 10:54

◀ Prev 1  ...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414  ... 506  Next ▶

카테고리

전체보기 (506)
지부장 일기 (188)
사무국 일기 (6)
회원 일기 (74)
문화생활 (29)
앰네스티 공식자료 (14)
블로그 블로깅 (17)
  • 387,448
  • 56107

Amnesty Diary: 앰네스티 일기

고은태'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고은태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Amnesty Diary Blog is powered by Tistory | 관리자 |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