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지난 11월 6일 목요일 저녁 6시, 압구정동 CGV에서는 사형제도를 다룬 다큐멘터리 "용서 -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가톨릭 측의 요청으로 일부러 서울까지 올라가서 관람했습니다. 물론 사형제도야 굉장히 관심이 있는 문제이지만, 사회적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심각한 주제를 다룬 영화를 기피하는 저로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이 영화의 시사회에 가는 것이 마냥 내키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가장 열심히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우리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가톨릭 측의 초대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서울까지 올라갔습니다. 영화는 TV용으로 제작된 듯 시종일관 커다란 화면을 좀 답답하게 사용했습니다. (SBS에서 제작해서 이미 SBS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것을 다시 극장판으로 내놓은 모양입니다.) TV물과 영화의 차이가 궁금해서 TV용 작품을 영화 스크린으로 보면 그 구별이 좀 될까 궁금해한 적이 있는데, 그 궁금증은 풀린 셈입니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영화는 무겁게 이어졌습니다. 어떻게든 감정적 충격을 좀 회피해보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런 노력도 헛되이 중반부쯤부터는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유 없는 잔혹한 살인에 어머니와 부인, 딸을 잃고도 살인자를 용서한 - 아니 용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고정원선생님을 비롯하여 다른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사형제도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향한 다른 인간의 용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살인과 사형이라는 근원적인 복수의 문제는 오히려 인간이 용서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황을 놓고 과연 용서가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으로써 배치된 느낌이었습니다. 가족의 참혹한 죽음을 낳은 잔혹한 살인, 그리고 이에 대한 유일한 합법적 복수로써의 사형,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용서라는 것이 가능한지 하는 물음이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따지고 보면, 용서는 우리에게 크던 작던 일상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용서라는 것이 단순한 일회성의 결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을 용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이런 점에서 용서는 길고 긴 과정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왜 매일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려운지 이해가 갑니다. 용서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고정원선생님의 입을 빌어 용서하지 않고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었음을, 살아갈 아무런 이유도 힘도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 용서는 단순히 가해자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결국 용서하지 않고는 고통의 치유가 시작될 수도, 피해자들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할 수도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용서는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주기도문에 쓰인 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그런 의미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는 이러한 힘든 용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결단과 노력이 단지 한 개인의 초월적 결심만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겠지요. 치유와 용서의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함께 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그 길고 험한 길을 걸어갈 힘을 제공받을 수 있음을 미국과 한국에서의 모임을 통해 보여줍니다. 또한 이를 위한 사회적 도움도 필수적이라는 것도 보여줍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빌어 강력하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살인사건이 아닌 모든 범죄에서 이 말은 유효할 것 같군요. 우선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를 전해야 할 것이고,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남은 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극한의 슬픔 외에 도 다른 상처와 곤궁에 빠지지 않도록 희생자를 대신하여 가족을 보살핀다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남는 것은 비탄과 원한 뿐이겠지요.

영화가 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으니 당연히 가톨릭적인 분위기가 많이 납니다. 불교면 어떻고 기독교면 어떻겠습니까. 극한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심지어 용서까지 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의 힘이라도 빌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사형폐지운동을 계속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무거울 것 같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생각이야 이전에도 꾸준히 해오던 것이지만, 영화를 통해 거의 날 것 그대로 마주치고 보니 훨씬 더 강력하게 마음에 와서 박혔습니다. 사랑하던 가족들의 부재에 몸부림치는 그 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무언가를 알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낸다는 것과 그것을 대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요.

영화의 메시지와 무관하게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형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꼭 살인자를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까지 얻어먹고 내려오는 길,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면서 머리가 조금 아파왔습니다. 오래 두고 고민할 질문을 얻어왔고, 참 크고 넓은 영혼들을 만나 인간이란 얼마나 굉장한 존재인지를 다시 깨달은, 그런 저녁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단에 사용된 '우군'이라는 표현에 대해 지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굉장히 군사문화적인 발상이었군요.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순간적인 둔감함과 평소의 언어생활을 반성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www.amnestydiary.net/trackback/12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이웅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형 폐지 + 용서 : 가능
    사형 폐지 + 안 용서 : 가능
    사형 유지 + 용서 : 불가
    사형 유지 + 안 용서 : 가능

    이거 너무 단순한가요? 산문으로 풀면, 물론 용서를 할 수 있으면 사형제도를 좀 더 쉽게 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로 사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용서를 못 하겠는 사람은 사형폐지에 찬성할 수 없다는 말이 되잖아요? 그렇죠?

    2008/11/09 19:51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오오...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명쾌하군요.
      저는 사형폐지에 찬성하지만, 살인범을 용서할 생각은 별로 없거든요.
      감사합니다.

      2008/11/09 20:46
  2. 황지현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네요~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2008/11/09 20:10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좋은 영화였어요.
      억지로 가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2008/11/09 20:47
  3. Fifi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형폐지는 지난번 프로젝트때 대학생회원들과 토론할때도 가장 까다로운 주제였습니다.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어서, 아직도 저는 제 입장을 정하지 못하겠더군요. 좀더 깊은 수준의 고민이 있어야할것같습니다. 지부장님의 포스팅은 늘 저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럴 기회를 만들어주셔 감사합니다.

    2008/11/12 11:07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형 자체의 중요성도 그렇지만, 이 문제를 통해 전반적인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가볍게 쓴 내용가지고 고민하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하하하

      2008/11/14 12:51
  4.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8/11/13 21:07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옥의 티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언어사용이군요.
      순간적으로 덜 예민했습니다.
      일단 그냥 두고 볼 때마다 반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11/14 12:52
  5. BlogIcon 두루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_^

    2008/11/18 16:49
  6. fifi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성당에 미사를 갔는데, 천주교 사회교정 사목위원회 이용우 신부님께서 특별 강론을 하셨고, 사목위원회 소식지에 빛의 사람들에 지부장님의 글, "용서, 그 먼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를 보고"을 보았습니다. 지부장님 성함이 반가웠고, 이미 본 글이였기에 친숙함이 더했습니다. 같이 가신 어머님께서도 어머 앰네스티네 하고 반가워하시더군요. 12월 한달은 앰네스티의 반가운 이름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아서 너무 좋습니다~:)

    아직 이 영화 챙겨보지 못해서 (백방으로 알아보았는데 구하는데 실패 ㅠ) 28일날 SBS 스페셜 (오후 11시 10분)에 재방영한다고 합니다. 꼭 보아야겠어요.

    2008/12/22 00:15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오호.. 전 못보았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온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어디에 언제인지 몰랐거든요.)
      한번 구해서 봐야겠네요.
      블로그에 실렸던 글을 활자로 보면 기분이 묘할듯 하네요.

      2008/12/22 22:05
  7.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정사목 홈페이지 들어가면 팝업으로 뜰텐데요....
    아닌가?

    2008/12/22 09:46
  8.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닌가보네요....

    2008/12/22 09:57
  9. fifi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 홈페이지에 가셔서 소식지를 클릭하시면 pdf 파일로 다운 받아 볼수 있답니다^^

    2008/12/24 03:45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오호 가서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필 제 페이지만 좀 지저분하게 나왔더라는...

      2008/12/24 23:07

◀ Prev 1  ... 390 391 392 393 394 395 396 397 398  ... 499  Next ▶

카테고리

전체보기 (499)
지부장 일기 (188)
사무국 일기 (6)
회원 일기 (74)
문화생활 (28)
앰네스티 공식자료 (12)
블로그 블로깅 (17)
  • 370,099
  • 67216

Amnesty Diary: 앰네스티 일기

고은태'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고은태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Amnesty Diary Blog is powered by Tistory | 관리자 |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