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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지부장 일기 2008/11/22 00:26 posted by 고은태
런던에서 ISP위원회 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ISP위원회는 2010-2016 국제앰네스티의 전체적인 통합전략계획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위원회입니다.) 사실 귀국은 이미 월요일(17일)에 했지만 밀린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제야 간신히 인사 드립니다. 런던이 추울까봐 걱정하면서 갔는데, 돌아와보니 한국이 훨씬 춥네요. 다들 잘 지내셨지요? 출장 중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전해 드리면서 인사를 대신합니다.

■ 히드로공항 입국심사대

같은 비행기에 탄 한 한국여성이 입국심사대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좀 도왔습니다. (그 여성과 입국심사관 모두를...) 말로만 듣던 특정 연령대의 한국여성에 대한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직접 체험하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한 뒤 '당신은 비행기표를 무슨 돈으로 샀는가?'라는 질문은 좀 너무 하지 않은가 합니다. 옆에서 듣는 제게도 꽤나 모욕적으로 들렸으니까요. 그 외의 꼬치꼬치 묻는 질문들도 상당히 거북하게 들렸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통과되었고, 그 뒤는... 모릅니다.

런던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특정연령대의 한국여성들이 - 물론 그 외의 한국사람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만 - 영국에 일단 입국한 뒤 불법체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여러가지 업종에 종사하면서 출국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국의 입국관리당국은 한국사람을, 그 중에서도 특정연령의 여성을 중점적으로 의심하고 엄격하게 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이 됩니다. 영국 당국의 처사를 인권침해의 눈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합리적 의심으로 보아야 할까요?

■ 국제사무국에서 발견한 한국지부 캠페인 사진

국제사무국의 조직개발담당부서(IMP: International Mobilization Program)의 Anil Pants를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앰네스티 태국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제3세계의 앰네스티는 늘 조직적인 취약성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고는 합니다. 이 외에도 한국을 방문했던 Jane East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해당 부서의 최고 책임자인 Srirak을 만나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벽에 붙어있던 사진에 관심이 갔습니다. 한국지부가 펼친 다르푸르 캠페인 사진이 붙어있네요. 아주 반가왔습니다. 사실 이전에 국제사무국의 다른 부서에서도 한국지부의 활동상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앰네스티가 진정으로 국제적인 활동이며, 한국에서의 활동이 국제사무국의 사람들에게도 격려와 힘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 붙어있는 보딩패스 한 번 보실래요? Air Torture(고문항공사)가 발행한 항공권이군요. 어떤 캠페인 관련인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심각한 인권침해를 막기위해 사람들이 동원한 유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

도착한 첫 날, 비는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한 한국분을 만났습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인권쪽으로 법학박사를 마치고 지금은 옥스포드의 연구소에 있으며, 내년 2월에 귀국예정인 분입니다. 지난 번 런던 촛불집회 때도 여러분을 만났지만, 지금 당장 런던에만도 인권쪽으로 공부하는 분들이 꽤 여러분 계십니다. 다른 나라까지 합치면 그 수가 상당하며, 인권쪽을 지망하는 분들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고마운 일이고, 이 분도 한국에 들어오시면 큰 역할을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런 분들을 수용할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꼭 필요한 인력이지만 활동할 공간은 별로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런 분들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있겠지요?

회의 첫 날, 독일지부장 출신이며 지금 중국에서 인권강의를 하고 있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국학생들도 인권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은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군요. 그러면서 중국에 가기 전에 베네치아에서 가르쳤던 학생들 중 아주 뛰어난 한국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점심 먹다가 마주쳤습니다. 점심은 나가지 않고 회의장 옆에서 이것저것 가져다놓고 먹는데, 마침 그 한국분이 국제사무국에서 일하게 되어 교육받다가 마주친 겁니다. 인사도 제대로 안나누고 만나자마자 저녁 같이 먹자고 하시더군요. 저야 좋지요. 만난지 2초만에 여성에게 데이트신청 받아보기도 난생 처음이지만, 그리고 나서 바람맞기도 처음입니다.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나 싶기도 하지만 굉장히 약오르고 서글펐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거든요.

■ 국제사무국

일반적으로 앰네스티의 본부라고 오해되고 있는 국제사무국 건물을 공개합니다.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허름하지요? 원래는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내부도 정말 낡고 지저분해서 마치 미로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내부를 몽땅 뜯어고쳐서 지금은 지저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좁고 복잡한 것은 별 수 없지요. 사무총장의 사무실도 매우 검소합니다. 보안도 꽤 엄격한 데 그 때문에 복잡한 건물 내에서 못나가고 밤을 새웠다는 한국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제일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사관들은 아마 근무 중 사망해도 꽤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보안 문제가 나온 김에 한국지부 사무실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립니다. 내외부적으로 한국지부가 사무실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데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이는 사무국의 자체적인 판단이 아니며, 지부 이사회의 정책입니다. 우리는 사무국의 직원들을 위한 충분한 보안조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직원들의 안전이야말로 이사회의 최우선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무실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뭐 이야기가 길지만, 이 문제는 일단 여기까지만...

■ ISP위원회 회의

ISP(통합전략계획)위원회 회의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간 계속되었습니다. 목요일에는 오후 5시에 시작한 대신 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머리가 과열되어 화재가 날 지경으로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 회의로 ISP 초안의 마련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어 하나에도 치열한 토론이 오갔으며 앰네스티의 많은 부분에 대해 기초부터 재검토하면서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민중심의 시민운동'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는 지고지선의 가치처럼 보입니다. 특히 '시민없는 시민운동'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앰네스티는 회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회원중심의 가치는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는 다른 가치와 충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련하는 것이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선언서가 아니라 실천가능한 계획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 번의 회의를 하면서, 국제앰네스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작업에 참여한다는 흥분과 기쁨도 있었고, 외부에서 초청된 최고의 위원들과 함께 논의를 하면서 정말 수준 높은 토론이 무엇인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바지에 이르니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상당히 강한 톤으로 의견을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되든, 이 계획의 최종안이 발표되는 내년 여름에는 앰네스티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과거의 앰네스티가 아닐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 돌아오는 길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은, 더구나 그 곳이 히드로공항이라면 늘 피곤하고 쓸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아침에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2시까지 회의를 하고, 잠깐 아는 사람을 만난 후 바로 공항으로 향했기 때문에 더욱 피곤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들만 아니라면 하루 더 묵고 오는 쪽을 택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 비행기 속에서는 까무러쳐서 10시간 동안 한번도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제 경우, 머리를 쓰고나면 정말 피곤해집니다.

전세계 인권과 국제앰네스티의 미래에 대해 희망찬 이야기들을 나누다 한국에 돌아오니, 대한민국 사회와 한국지부의 현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앰네스티 활동 중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지요. 이제는 좀 심리적 적응이 되었고 또 다음 싸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치열한 도전을 기다립니다. 함께 합시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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