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봉쇄된 청계천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분노,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공포. 갓난아기를 엎고 있는 여성과 어린 학생들, 그리고 직장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며 평화로웠다. 그러나 문화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막아 선 전경들에게 집에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집에 가기위해 왜 부탁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답 없는 봉쇄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와서 분노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들! 우리에게 과연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많은 통치자들은 다양한 공포를 퍼뜨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공포, 이주민에 대한 공포, 테러에 대한 공포, ‘불량국가’에 대한 공포. 불의한 권력에 의해 심겨진 공포는 이와 결탁한 언론을 통해 점점 자라난다.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가 분열, 폭력과 분쟁으로 꽃피우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 원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라면 당장 대응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들의 권리를 보호해기 위해서라면 그것 역시 실패하고 있다. 집회와 상관없이 어제 그 자리에 있었던 그 누구도 경찰의 대응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공포를 느꼈고 정부를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는 세계인권선언은 2차 대전 이후 어지럽던 시절, 세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약속한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선언문이 아쉬운 점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결정이었으며 지도자들의 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인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보편적으로 이야기 되지만, 통치자들은 무책임으로 세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의 비전과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부가 아시아에서 인권의 리더로 역할하기를 자청했다면, 법무부가 스스로 인권옹호를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음을 안다면, 경찰청이 인권을 존중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면, 최선을 다해 이를 실천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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