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는 부지런히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시우 사진작가의 고등법원 결심공판이 오후 1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시우작가는 앰네스티가 양심수로 결정한 사례입니다. 징역 10년이라는 무시무시한 구형을 받았었지요.
자국활동제한 때문에 한국지부가 이시우작가를 위해 특별히 활동한 것은 없지만, 재판 초기에 방청을 간 적이 있어서 이번 결심공판도 방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무죄판결 소식을 듣는다면 제게도 좋은 성탄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약간 있었습니다.
예정보다 아주 일찍 고등법원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결심공판이 연기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황당한 헛걸음이라니… 상당히 허탈했습니다. 게다가 하도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상황이어서 결심공판 연기가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온갖 불길한 상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왕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가기도 뭐해서 한국지부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사무국장님과 연제헌이사님이 사무국 직원의 후생복지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몇 시간째 끼니도 거른 채 논의 중이시더군요. 얼마나 열띤 논의였는지 연 이사님은 얼굴이 다 벌개져 있더군요. 사무실이 쉬는 날인데 이렇게들 열심히 하고 계신 것을 보니 흐뭇해졌습니다.
대충 정리가 되었다고 와서 봐달라고 해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는 아주 좋은데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힘든 허점들이 여럿 있더군요.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맺으려면 참 힘들고 고통스러운 중간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일 년 내내 좋지 않은 소식만 들어서 심신이 피로해진 채로 맞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최근에는 일제고사 거부관련 징계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로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게 무슨 최악의 성탄선물이란 말입니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보호하라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듭되고 있고 스스로도 도입을 추진한다던 입장을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다고 홀랑 뒤집어 버리는 국방부가 참 야속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 언제 그렇게 국민여론을 존중했다고, 이럴 때만 국민여론을 방패 삼는 것을 보면 가증스럽다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이왕 그럴 거면 다른 문제도 다 여론조사로 결정하든지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니 정부 뿐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준 시민들까지 얄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론조사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쩌면 이렇게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무지하고 잔인하단 말입니까.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상심의 폭과 깊이는 너무 컸습니다.
이래저래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좀 없을까요? 2000년 전,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 날 만이라도 즐거운 소식이 듣고 싶었던 것은 제 마음이 지치고 안이해져 있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이런 크리스마스는 다시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셨는지요?
아, 생각해보니 제게도 크리스마스의 작은 기적 하나가 있기는 했습니다. 25일 하루 종일, 메일이 한 통 밖에 안 왔더군요. 아직도 사람들 마음 속에 크리스마스 정신이 조금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지금 머무르는 곳 가까이에 큰 성당 하나가 있는데, "평화의 모후" 앞에 초를 켜고 조금 있으니까, 키 작은 할아버지 한 분이 성모상의 발을 만지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성모상 발밑에 온통 쪽지들이 있는 겁니다. 다른 성화나 성인상 앞에서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는데, 역시 평화는 개인들의 운명과도 직접 관계가 있고, 그래서 평화를 바라는 사람 사람의 마음은 역시 특별히 구구절절하겠지요.
새해에는 그런 마음들이 힘을 좀 쓸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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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무르는 곳 가까이에 큰 성당 하나가 있는데, "평화의 모후" 앞에 초를 켜고 조금 있으니까, 키 작은 할아버지 한 분이 성모상의 발을 만지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성모상 발밑에 온통 쪽지들이 있는 겁니다. 다른 성화나 성인상 앞에서는 그런 걸 본 적이 없는데, 역시 평화는 개인들의 운명과도 직접 관계가 있고, 그래서 평화를 바라는 사람 사람의 마음은 역시 특별히 구구절절하겠지요.
2008/12/28 00:52새해에는 그런 마음들이 힘을 좀 쓸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주석학자인 제 쌍둥이가 난민 맞다고 했습니다. 이집트에 갔을 때.)
이집트는 똑 떨어지는 난민 맞죠...
2008/12/28 06:14변명하자면, 저는 베들레헴에만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잖아요.^_^;;
평화는 생각해 볼수록 간절한 가치입니다.
다만 오늘은 '나는 평화를 주러온 것이 아니다'는 말씀을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분의 최후진술문을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2008/12/30 20:10http://nooegoch.net/110
참 갈 길이 멀고 멀군요.
2009년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요.
힘을 내야겠어요.
가서 다시 읽고 왔습니다.
2009/01/01 09:39무죄판결이 났으니 참 다행입니다.
간혹 좋은 소식도 있군요.
힘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