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꽤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외국의 어느 호텔 방에서, BBC로 기억되는 뉴스를 켜놓았다가 이스라엘 관련 꼭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에 따라 이스라엘 정착촌의 철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기사는 정착촌 철수를 진행하려는 이스라엘당국(이스라엘 군이었던 것 같습니다)과 철수를 거부하는 정착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황을 크게 보면, 합의에 따라 정착촌 철수를 강행하려는 이스라엘정부는 선이고 이에 저항하는 정착민들은 악입니다. 온 인류에게 있어 중동평화는 해당 지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긴급한 가치일 테니까요. 그런데 화면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과 철거용역 사이의 대결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상황일 듯도 합니다. 어느 정도의 보상금이 주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땀 흘려 가꾼 정든 집과 마을을 버리고 떠나라는 정부의 명령에 대해 그것이 아무리 중동의 평화라는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한들 당사자인 주민들이 쉽게 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고, 무력으로 저항하는 등 정착민들의 저항은 나름대로 처절했습니다.

그 화면을 보면서 - 영어가 딸려서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 순간적으로 두뇌 안에 커다란 혼란의 폭풍이 발생했습니다. 뒤바뀐 선과 악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이성과 감성이 완전히 반대로 작동하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은 역시 간단한 게 아니라는 지독하고 씁쓸한 깨달음 같은 것이었지요.

이제 와서 당시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스라엘정부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으니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말자는 식의 한가한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지 상황이 꽤나 복잡하고 덕분에 제 머릿속도 뭔가 굉장히 엉켜있다 보니 이 오래된 기억까지 되살아나고 말았네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또 나름대로의 - 밖에서 보기에는 말도 안되지만 - 강고한 논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한 모든 절망적이 보고들 중에서 저를 가장 기겁하게 하는 것은 며칠 전에 보도된, 이스라엘 내의 유대인들 중 95%가 이번 공격을 찬성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여론조사의 허구성을 충분히 감안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압도적인 찬성을 넘어 찬반토론 자체가 무의미한 수치입니다. 저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의견들이라면 기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내부적 사정에 대해서는 박노자님의 블로그에 탁월한 글들이 몇 개 올라와 있지요. (박노자 글방 바로가기)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이 암담하다는 사실이 너무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 있어서 글을 몇 개 읽다가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지더군요. 모든 상황이라는 것이 유동적이지만 현재로써는 이스라엘 내부에는 아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 내부에서의 양심적 외침에 의해 이스라엘의 정책이 변화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겠네요. 그렇다면 밖으로부터의 - 무력을 동원한 것이든 아니든 - 압력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는 것 외에는 길이 없는데, 물론 이것도 가능성이 그다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설사 이런 가능성 희박한 상황이 현실화된다 해도 과연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 불리를 깨닫고 입장을 바꾸게 될까요?

저는 그 보다는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전술, 패배를 받아들이느니 죽음으로 항전하겠다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많지요. 역사적으로 보나 현 상황으로 보나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집단 보다 더 강력하고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 이번에는 편만 바뀌어서 나타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역사의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 평화와 시민의 안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답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상상조차 백일몽에 불과한 것은, 이스라엘이 핵 보유국이라는 점입니다. 현실의 정황상 누구도 이스라엘인 스스로 원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답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사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답도 없는 이야기를 왜 늘어놓았느냐고 탓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너무 답답해서 그저 이런 심정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글 중 어느 부분도 앰네스티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것,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시지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www.amnestydiary.net/trackback/182 관련글 쓰기

  1. 팔레스타인. 가자가 함락된다면? 다음은 서안지구(West Bank)다.

    Tracked from A Strange Juxtaposition of Thoughts  삭제

    *이 글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이하 LRB) 1월호에 개제된 사라 로이(Sara Roy)의 "가자가 함락된다면...(If Gaza Falls...)"의 전문 번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간략한 나의 입장을 추가하였다. 블로그를 통해 사라 로이의 글을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이 포스트의 제1목적이다. 글의 내용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단지 하마스를 공격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자 지구 전체..

    2009/01/17 02:42

댓글을 달아 주세요

◀ Prev 1  ... 338 339 340 341 342 343 344 345 346  ... 499  Next ▶

카테고리

전체보기 (499)
지부장 일기 (188)
사무국 일기 (6)
회원 일기 (74)
문화생활 (28)
앰네스티 공식자료 (12)
블로그 블로깅 (17)
  • 370,099
  • 67216

Amnesty Diary: 앰네스티 일기

고은태'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고은태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Amnesty Diary Blog is powered by Tistory | 관리자 |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