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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린이의 인권

지부장 일기 2009/05/05 16:40 posted by 고은태
이 블로그의 필진 중 한 분이신 꼬규환님께서 어린이날인데 왜 단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를 위한 활동이 없느냐는 항의를 해오셨습니다. 순간 뜨끔했습니다. 어차피 제가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탓을 해보지만 아무래도 변명이 안됩니다. 더구나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이미 어린이날 성공적인 캠페인을 벌인 경험도 있고, 저 역시 집에 어린이(?)가 있는 사람으로써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글 하나 올리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좀 면해 볼까 합니다.

미래세대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그들이 가지는 취약성으로 인해, 어린이의 중요성 특히 그 인권보호의 중요성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주제일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그 인권에 있어 성인에 비해 특별히 더 보호받아야 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 가정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을 보면 어린이들은 전세계적으로 미래세대로 보호받으며 자라나기 보다는 지금 당장 인권침해의 피해자인 경우가 너무 많이 눈에 뜨입니다.

살인도구로 이용되는 소년병들,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어린이들, 성매매와 착취의 대상으로 팔려나가는 여자어린이들… 이처럼 국가와 사회에 의해 기본적인 생명마저 위협당하는 어린이들이 있고, 가정과 주변 어른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빈곤과 질병, 사회적 안전장치의 부재로 삶이 위협당하는 어린이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많은 경우 이들은 적절한 교육과 보살핌의 결핍으로 인해 미래의 희망마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혹시 누구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세상에서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 이상입니다. 이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정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많은 경우 자기보호와 저항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어른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파키스탄의 노조활동가였던 어린이, 이크발 마시(Iqbal Masih)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살에 12달러에 카펫직조공장의 노예로 팔려, 사회활동가에게 구조될 때까지 6년간 기계에 족쇄가 채워진 채 일해야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고 겨우 10펜스의 임금을 받았고, 그나마 자기 가족들이 사장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당시 파키스탄에는 이크발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백만의 어린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조된 후, 이크발은 노동운동가가 되어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는 어린이 노예노동의 끔찍한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1995년 4월 16일, 12살의 나이로 살해당합니다. 그 2년간 이크발은 3,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노예노동으로부터 구조하는데 힘을 보탰고, 전세계를 돌며 어린이 노예노동의 참상을 고발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카펫업자들에 의한 암살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가 처해온 극도로 열악한 상황 때문에 12살이었음에도 신체사이즈는 6살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것은, 많은 경우에 어린이들은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침해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린이이기 때문에 인권침해의 목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복종하고 저항하지 못하며 연약하고 섬세하다는 바로 그 어린이로서의 특성 때문이 그들은 살인과 죽음을, 강제노동을, 성적 노리개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어린이이기 때문에 이런 인권침해로 인해 이들이 받는 상처는 훨씬 더 크고 회복하기 힘듭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어떠할까요? 좀 나은 상황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이들에게 가해지는 공부의 압박, 사회적 환경에 따른 차별과 좌절, 많은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빈곤에 의한 어려움 등 우리 사회 역시 어린이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사회 뿐 아니라 많은 부모와 가족들 역시 어린이에 대한 인권침해의 가해자입니다.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정이라도 어린이의 보호막이 되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어른들의 무지와 이기심 때문에 가정 역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운 어린이날,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잊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반성하면서, 오직 인권이 보장된 곳에서만 어린이들 역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어린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권침해의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어린이들 만이라도 인권을 보호받는 그런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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