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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에서 조사관을 지원하는 분들이 너무 지치기도 했고, 한국지부가 진행하거나 준비하는 또 다른 캠페인들도 있는지라 주말 이틀 동안 조사관과 동행하면서 조사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몸빵이라 부르면... 이상하겠죠?

제가 한 일은 주로 피해자 인터뷰 때 옆에 앉아서 인터뷰 내용을 한글로 기록하고 - 조사관은 영어로 기록합니다 - 한국말로 진행되는 조사가 간혹 막힐 때 통역을 돕고, 혹시 빠진 질문이 있으면 보충질의를 거들기도 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 중에는 정말이지 너무 기가 막힌 것도 있었고, 직접 보여주시는 상처의 흔적들이 끔찍하기도 했습니다. (왜 뒷머리를 찍는 겁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분들의 참여동기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 아름답기까지 한 순수한 분노가 가장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앰네스티에 와서 조사에 응해봐야 사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생기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보상을 받아주는 것도, 고소 고발을 진행해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고소고발을 포기한 분들이나, 지원되는 치료비를 받지않고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기 위해 부상사실을 알리지 않은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도대체 왜, 이분들은 자기 시간과 돈을 써가며 앰네스티의 조사에 응해주셨을까요? 자신은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지만 이런 끔찍한 일이 꼭 앰네스티를 통해 알려져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신다고 했습니다.

한 여자분께서는 조사 내내 너무 말씀을 잘하시며 세부사항까지 자세히 그리고 재미있게 말씀해 주셨는데, 마지막에 질문이나 하실 말씀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만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함께 울어버릴 뻔 했습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왜 촛불이 꺼지지 않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조사관이야 더 힘들었겠지만, 받아적는 저도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내색을 할 수 없더군요. 그런데 힘든 것 보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도저히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증언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바로 10미터 앞에서 부상당하신 분, 제가 그 자리를 떠난지 10분 쯤 후에 잡혀가서 폭행을 당하신 분, 자녀들 앞에서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기절하셨던 저와 동갑내기인 분, 제가 있던 바로 그날 다른 쪽에서 부상 당하신 분... 왜 이렇게 다 무언가 연결이 되는지요.

제가 별 생각없이 서 있던 그 자리, 그 순간이 다른 누구에게는 지옥이었던 겁니다. 기록하면서도 자꾸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동정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그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조사내용은 제가 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인용하지 못하는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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