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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이해와 화해 그리고 연대를 위해 쓴 글이지 결코 비판과 갈등을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혹시 손가락이 근질근질 하시더라도 지금은 아직 많은 분들이 슬픔 속에 있음을 감안하여 글의 목적에 맞지 않는 댓글은 자제해 주십시오. 그럴 우려가 있는 글이 보이면 죄송하지만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논쟁은, 며칠 후에 합시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후에 보이는 뜨거운 추모의 물결을 보면서 적어도 몇몇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왜 용산참사 때는 그다지도 냉정하게 돌아섰는가. 수 많은 또 다른 권력의 희생자들에게는 어째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가. 그동안 숱하게 들려온 정의를 구하는 외침에는 어째서 반응이 없었는가. 어째서... 어째서...

딱히 이번 경우와 비교해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필자 역시 용산참사 이후의 부족한 관심과 그 마저도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리는 상황에 경악했고 고민해 왔다. 아니 남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반응조차도 그러하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자문자답이고,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며,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용산참사 희생자들 보다 백만배쯤 훌륭했기 때문에 - 혹은 그렇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 이런 차이가 온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백만배쯤 귀하기 때문에 - 대통령을 했거나 또 다른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거나 -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생명일 뿐, 그 어느 생명도 다른 생명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그럼 내 마음은 - 그의 정치노선에 찬성하지도, 집권 중 그가 한 일 중 상당부분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 왜 그의 죽음에 특별히 더 강하게 반응하는가. 우리 사회는 왜 그런가.

그는 대통령이었다. 그 이전에 사랑받는 정치인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그를 찍은 사람에게는, 혹은 마음 속으로라도 지지해본 사람에게는 그는 결코 남이 아니다. 자신의 지지와 승인을 받은 인물이었다. 인간은 당연히 그의 가족의 죽음에, 그의 친구의 죽음에, 어떻게든 그와 연관이 있던 사람의 죽음에 더 슬퍼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며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옳은 일을 하더라도 지지와 승인 없이 세상을 움직일 수는 없다.

나는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혹은 또 다른 한국의 시민단체와 사회운동들이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고 시민들과 함께 하며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 번이라도 앰네스티의 회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서명운동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행사에든 함께 했던 사람이라면, 선택의 순간에 그의 마음은 움직일 것이다. 이 힘이 진정한 대중의 힘이고 참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결국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단지 그 한 사람을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인해 꺾인, 혹은 이미 사라졌으나 그의 죽음으로 확인된 우리의 현실을 슬퍼하고, 그로 인해 상징되는 우리가 꿈꾸던 미래를 아쉬워하고,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가슴아파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한 인간이되, 또한 하나의 인간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생명의 사라짐 이상의 울림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무현을 위해 울되, 동시에 스스로를 위해 울고, 다른 사람의 눈물 때문에 운다. 이토록 큰 애도의 물결이 - 다른 사건과의 단순비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감정에 공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렇게 움직인다. 비등점을 넘어서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붉은 셔츠를, 촛불을, 그리고 애도의 소리들을 광장으로 불러낸다. 필요한 것은 임계점을 넘기위한 공감의 크기이다. 그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단순히 그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다. 그를 잃은 것에 울고, 그가 떠나게 내버려둔 자책에 운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자들에 대항할 더 이상 준거가 존재하지 않음에 스스로가 서글퍼서 운다. 결국 그의 삶과 죽음은 - 그것이 실제적인 것이었든 아니면 단순히 상징차원의 것이었든 - 지금 울고 있는 모든 사람의 오늘과 연결되어 있다. 세상이 정말로 변화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처럼 스스로와 가까이 묶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를 위해 울되 동시에 기억하고 생각했으면 한다. 이제 그가 없이 우리는 가야 하고 우리의 의지는 우리 뿐이라는 것을...

그가 우리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불살랐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죽음에 울고 있는 것이라면, 그를 떠나 보낸 후에 우리 서로를 위해 울자. 왜냐하면 우리도 우리 중 하나이고, 보통 사람이고, 대체로 좋은 사람이고,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고, 어쩌면 서로의 격려 속에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불사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스스로가, 서로가, 우리가 의심스러우면 오늘을 기억하고 작년의 촛불을 기억하자. 비록 우리 매일매일이 비루하고 거울 속의 내가 결코 존경할만한 인물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희생해서 밝은 촛불을 태워올릴 수 있음을. 비록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와 가야 한다고 믿는 길이 다를지라도 우리에게는 공명의 힘이 있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같아질 수는 없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다름이 서로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를 떠나 보낸 후에는 우리 더 많이 울자. 결코 마음의 문을 도로 닫지 말고, 서로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 울자. 비록 그 누군가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해도, 매력적인 인간이 아니라해도, 우리의 꿈과 원망을 담았던 대통령이 아니라해도, 서로를 위해 울어주자. 우리에게는 우리 밖에 없으니. 그리고 그 누군가는 우리의 일부이니. 서로를 보듬고 눈물로 길을 닦아 아름다운 미래로 함께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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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모인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news&id=46505

    두통의 유서를 다시 읽으며

    2009/05/26 21:29
  2. 네모인간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어제 밤에 봤지요 ㅎㅎ

    2009/05/27 10:22
  3. Fiona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오랜만에 글을 남겨보네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주입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나 영결식이 내일이군요.
    서로를 위해 흘리는 이 눈물을 우린 기억해야할것입니다. 서럽게 살아 남은자는 잊지 않아야 할것입니다.

    2009/05/2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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