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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말이지 앰네스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완전히 개인적인 글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리고, 감상에 젖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던 나는 잊고 있던 기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학 다니던 시절, 수업받던 교실로 최루탄 개스가 매캐하게 밀려들어왔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여러분이 치뤄야할 세금입니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휴강하거나 최소한 출석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정도 희생도 없이 민주주의를 얻으려 하십니까." (때론 출석부가 경찰에 의해 집회 참석여부를 가리는 증거가 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우리는... 대한민국은... 인간답게 살기위해 치뤄야할 댓가를 다 치룬 것일까. 87년의 승리에 타협하고, 좀 나아졌다는 생각에 자족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았나. 역사는 세금과 같아서 결코 잊는 일이 없다. 조금 늦어질 수는 있으나, 지불이 면제되는 일은 결코 없다. 늦춰지면 오히려 가산금이 붙는다.

그때와는 달리 나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직업이 생기고, 잠을 잘 집이 생기고... 따뜻한 잠자리와 밥에 만족하면서 다 치르지 못한 댓가를 애써 잊지는 않았는가. 전태일의, 박종철의, 수 많은 동료와 선후배의 죽음으로도 역사의 요구에는 아직 부족했던 것인가. 아니, 나는 그들의 희생에 편승하여 나의 의무를 대충 때우려 했는가.

흘려야할 피와 땀과 눈물을 모두 채우기 전까지는, 우리에게는 결코 달콤한 잠도 안온한 삶도 주어지지 않는다. 굴종하고 내게 주어진 작은 것들에 애써 만족하면서 살아가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일어서서 쓰러질 때까지 싸우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전태일의 희생은 그의 승리이지 나의 승리가 아니었다. 이토록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찾아온 처절한 깨달음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끔찍한 악몽에 놀라 깨어나고는 했던 그 젊은 날의 위태로운 잠은, 이제 현실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나는 나의 댓가를 기꺼이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준비는 커녕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남들 뒤에 숨어 20여 년을 보낸 후에 역사는 다시 묻는다. 너의 댓가는 어디에 있느냐고. 그 질책 앞에 나는 발가벗겨져 혼자 선다. 누워있는 사람들을 방패로 찍고 군화발로 밟는 순간, 나는 다시 선택 앞에 내던져진다. 못채운 피와 땀과 눈물을 이제라도 메꾸면서 인간으로 살다가 죽을 것이냐, 아니면 무릎을 꿇을 것이냐.

그동안의 내 삶이 송두리채 유예였을 뿐임을 깨닫는 것은 끔찍한 각성이다. 결국 덜 부끄러운 묘비명 만이 우리 시대 스스로 일어서려는 자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세대는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 이제 남은 시간으로는 도무지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행히도 거리는 내게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내 앞에 있는데, 뒷자리마저 마다하고 도망갈 수는 없다. 그들이 내 힘이고 희망이며 지도자들이다. 능력과 용기의 부족을 한탄할 수는 있으되, 나의 작은 몫을 외면할 변명은 되지 못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날이 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간혹 주저 앉아도 어쩔 수 없으리라. 숨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투쟁 속에서 인간이고 싶다.

(음악은 민중문화연합의 1988년 열두번째 앨범인 '저 평등의 땅에'에 수록된 '연대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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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경대학교 전자과학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현재 대학을 다니는 08학번 1학년입니다.

    제가 7월(촛불투쟁 2달후)부터야 겨우 주말에 참가하는 정도라 아직도 부족함이 많으며,

    실제로 사태를 겪어보면 말씀대로 적든 크든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적게는 저의 여가 시간에서 크게는 저의 목숨까지 말입니다.

    군홧발에 밟히고 방패에 찍힐것을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서기가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집회만큼

    은 빼먹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너무나 겁납니다. 자칫 했다가 불이익을 받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를 두려워 하고 맞는 것을 무서워하여 선두에 서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싸우지 않는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하니까.. 그럴수 없기에 나섭니다.

    이러쿵 저러쿵 기준없이 글을 썼지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추신: 글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립니다. 애교는 아니지만 봐 주세요^^;;

    2008/07/25 01:46
    • BlogIcon portico  수정/삭제

      주책맞은 중년의 허망한 글에 달리기에는 너무 귀한 글이군요. 실은 님의 답글을 읽으며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요새 왜 이리 눈물이 헤퍼졌는지.
      대학교 1학년이시라니, 너무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사시고, 변하지 않으신다면 여가 시간의 일부만 희생을 꾸준히 하셔도 님의 댓가는 넘치게 치르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질기게 나가려면 아마 여가시간의 일부도 결코 작은 희생이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봅시다. 제 살아 생전에 안된다면, 님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라도....

      2008/07/2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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