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올 일이었다. 사퇴하지 않았어도 4개월 후면 바뀔 위원장 자리였다.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4개월 앞당겨진 사퇴소식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걱정이 태산이다. 애써 눈을 감아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올 일이고, 뭔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그때까지는 그냥 잊고 살려고 했었다.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빠르게 전해진 사퇴소식에 새삼 충격을 받는다. 누굴 탓할 문제도 아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나였으니까 내가 느끼는 배신감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저렇게 위안을 해보아도 눈 앞에 현실로 다가온 충격을 이기기는 너무나 힘들다. 정말로 앞 일이 걱정된다.
사퇴를 결심한 안경환위원장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 할 말이 없다. 한 평생 학자로 살아온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했을 수모와 굴욕을, 자세히 아는 바는 없지만 언론에 그간 흘러나온 이야기들만 종합해 보아도 누구도 그에게 그 자리에 더 붙어 있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국가의 독립기관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생존과 위상을 걸고 안경환위원장이 부딪혀야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할 이야기는 아니나, 나라면 벌써 뛰쳐나왔을 것이니 정말이지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준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린다.
처음 인권위원장에 취임했을 때,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엘리트 학자에 모범생 분위기에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며 어쩐지 소극적일 것 같은 분위기. 과연 거친 자리인 인권위원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지인의 좋은 평가에도 미덥지 않았고, 취임 초기의 온건한 행보는 더더욱 선입견만 강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인권위가 겪은 거센 격랑 속에서 안경환위원장은 자기 할 일은 120%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사퇴의 시기결정까지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위로와 박수를 함께 보낸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행사장에서 몇 번 악수한 것을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기로는 공식접견 딱 한 번이 우리가 만난 전부이다. 작년 여름 이후로는 방문해서 감사든 위로든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안 그래도 정부 일각에서 앰네스티와 국가인권위의 관계를 의심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에 전화해 보았으나 연락불가능이라는 대답만을 들었다. 편지는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하겠지만 한 통 써 보내는 것이 도리일 듯 하다. 후임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랑스럽던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실제적인 측면에서나 전체적인 분위기로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역시 단단히 각오해야 함을 의미한다. 매달 힘들게 회비를 내주시는 일만이 넘는 회원들에게 너무 죄송한 일이나, 타협을 감수할 바에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나, 적어도 그런 결의로 활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혹시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부디 현 정부가 이성을 잃지 않아서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앰네스티를 떠나서, 그리고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을 떠나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이 겨우 도달했던 인권지도국가에서 한참 뒤떨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무슨 수를 써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돈이 많아지겠는가, 군사력이 강해지겠는가. 그런 방면으로는 절대 골목대장도 못한다. 그러기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너무 불리하다.
우리가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바로 인권이었다. 인권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아시아 전체의 인권지도국가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대한민국이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이 단지 수출을 잘해서, 로비를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의 개선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상대적으로 잘 활동하는 국가인권위원회였다.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국가인권위의 위상 격하를 추진해서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걱정거리가 되더니, 규모를 대폭 축소했고, 아마 최소한의 대화도 대접도 없었던 모양이다.
국내에서는 눈엣가시였을지 모르나, 바로 그 국가인권위 때문에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대접받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나 보다. 국가 브랜드 강화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인권을 꾸준히 신장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제 몫을 함으로써 국가는 물론 개개인까지도 존경 받을 수 있다. 좀 치사한 이야기지만 안위원장이 말했듯 이건 돈으로 따져도 엄청난 가치이다.
22조 들여 강줄기를 파헤쳐서 얻을 수 없는 정말 거대한 것이 인권에 있다. 그렇게 얻어지는 국가브랜드는 경제적 효과를 넘어서, 정말로 국력과 국격을 신장시킨다. 이런 대외적 효과를 떠나서라도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바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제발 인권만은 손대지 말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지만, 현실은 너무 다르다.
지난 일 년 넘게 우리사회의 인권이 이리 저리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무겁다. 제발 후임 위원장 만이라도 제대로 된 인권인사로 임명해주고, 이제 더 이상은 인권상황을 후퇴시키지 않을 수는 없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텐데…
써놓고 보니 좀 횡설수설이네요.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글이 마냥 길어질 수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너무너무 걱정이 되는 거지요. 물론 이 글도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조금 빠르게 전해진 사퇴소식에 새삼 충격을 받는다. 누굴 탓할 문제도 아니다.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나였으니까 내가 느끼는 배신감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저렇게 위안을 해보아도 눈 앞에 현실로 다가온 충격을 이기기는 너무나 힘들다. 정말로 앞 일이 걱정된다.
사퇴를 결심한 안경환위원장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 할 말이 없다. 한 평생 학자로 살아온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했을 수모와 굴욕을, 자세히 아는 바는 없지만 언론에 그간 흘러나온 이야기들만 종합해 보아도 누구도 그에게 그 자리에 더 붙어 있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국가의 독립기관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생존과 위상을 걸고 안경환위원장이 부딪혀야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할 이야기는 아니나, 나라면 벌써 뛰쳐나왔을 것이니 정말이지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준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린다.
처음 인권위원장에 취임했을 때,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엘리트 학자에 모범생 분위기에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며 어쩐지 소극적일 것 같은 분위기. 과연 거친 자리인 인권위원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지인의 좋은 평가에도 미덥지 않았고, 취임 초기의 온건한 행보는 더더욱 선입견만 강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인권위가 겪은 거센 격랑 속에서 안경환위원장은 자기 할 일은 120%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사퇴의 시기결정까지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위로와 박수를 함께 보낸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행사장에서 몇 번 악수한 것을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기로는 공식접견 딱 한 번이 우리가 만난 전부이다. 작년 여름 이후로는 방문해서 감사든 위로든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안 그래도 정부 일각에서 앰네스티와 국가인권위의 관계를 의심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에 전화해 보았으나 연락불가능이라는 대답만을 들었다. 편지는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하겠지만 한 통 써 보내는 것이 도리일 듯 하다. 후임위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랑스럽던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실제적인 측면에서나 전체적인 분위기로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역시 단단히 각오해야 함을 의미한다. 매달 힘들게 회비를 내주시는 일만이 넘는 회원들에게 너무 죄송한 일이나, 타협을 감수할 바에는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나, 적어도 그런 결의로 활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혹시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부디 현 정부가 이성을 잃지 않아서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앰네스티를 떠나서, 그리고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을 떠나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이 겨우 도달했던 인권지도국가에서 한참 뒤떨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무슨 수를 써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돈이 많아지겠는가, 군사력이 강해지겠는가. 그런 방면으로는 절대 골목대장도 못한다. 그러기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너무 불리하다.
우리가 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바로 인권이었다. 인권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아시아 전체의 인권지도국가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대한민국이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이 단지 수출을 잘해서, 로비를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의 개선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상대적으로 잘 활동하는 국가인권위원회였다.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국가인권위의 위상 격하를 추진해서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걱정거리가 되더니, 규모를 대폭 축소했고, 아마 최소한의 대화도 대접도 없었던 모양이다.
국내에서는 눈엣가시였을지 모르나, 바로 그 국가인권위 때문에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대접받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나 보다. 국가 브랜드 강화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인권을 꾸준히 신장시키고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제 몫을 함으로써 국가는 물론 개개인까지도 존경 받을 수 있다. 좀 치사한 이야기지만 안위원장이 말했듯 이건 돈으로 따져도 엄청난 가치이다.
22조 들여 강줄기를 파헤쳐서 얻을 수 없는 정말 거대한 것이 인권에 있다. 그렇게 얻어지는 국가브랜드는 경제적 효과를 넘어서, 정말로 국력과 국격을 신장시킨다. 이런 대외적 효과를 떠나서라도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바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제발 인권만은 손대지 말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지만, 현실은 너무 다르다.
지난 일 년 넘게 우리사회의 인권이 이리 저리 난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무겁다. 제발 후임 위원장 만이라도 제대로 된 인권인사로 임명해주고, 이제 더 이상은 인권상황을 후퇴시키지 않을 수는 없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텐데…
써놓고 보니 좀 횡설수설이네요.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글이 마냥 길어질 수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너무너무 걱정이 되는 거지요. 물론 이 글도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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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봐도 비디오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게 아닐까요.
2009/07/02 05:17안봐도 비디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거 뭐 잘못하면 ICC의장 후보국 선출 반대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요.
2009/07/02 08:45치하? 48년생이시던데..
2009/07/08 17:59헛.. 이런, 부적절한 표현을... 지적 감사합니다.
2009/07/08 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