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가 살고 있는 보스턴 지역의 바로 옆 동네인 캠브리지 (하버드 대학이 있는 곳) 에서 이 동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워낙 미국에서도 대서특필되는 사건이니, 아마 한국에서도 실시간으로 꽤 보도되었을 것 같네요. 지금 이 사건의 발생지인 보스턴 지역에서는 이 사건이 일주일 내내 아주 장안의 화제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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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살아있는 미국 흑인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라는 흑인 하버드 대학 교수 (흑인 역사 전공 교수로 정말 유명한 사람) 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유는 이렇다. 그가 중국 출장에서 다녀온 직후, 자기 집 정문을 열다가 문이 고장나서 안 열렸다. 그래서 뒷문으로 일단 자기집에 들어간 후, 공항에서 타고 온 흑인 택시 운전사의 도움으로 둘이 함께 (교수는 안에서, 택시 운전사는 밖에서) 정문을 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못 보던 흑인이 이웃집 문을 강제로 여는 것을 지켜본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교수와 경찰이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백인 경찰이 흑인 교수를 괘씸죄로, 우리말로 이야기 하면 일종의 “경찰 모독 및 공무집행 방해죄” 비슷한 죄목으로 대낮 백주에 수갑을 채워서 경찰서로 끌고 간 것이다.
나중에 하버드 대학의 법대 동료 교수가 변호사가 되어, 게이츠 교수는 일단 석방이 되었지만, 저명한 하버드 흑인 교수를 자기 집에서 수갑을 채워 끌고 가는 사진이 공개되자, 그 자체가 매우 센세이셔날 한 것이었다. 석방된 게이츠 교수는 그야말로 열을 무척 받아서,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공론화하면서, 자기를 수갑 채워 끌고 간 경찰을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두고 흑인 교수와 백인 경찰의 말이 서로 엇갈리는게 문제다.
흑인 교수의 말은 이렇다 “집 안에서 문을 고치고 있는데, 경찰이 와서 처음부터 매우 건방진 태도로 아무 설명 없이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내가 이집 주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운전면허증과 하버드 대학 교수 신분증을 제시했는데도 다짜고짜 나를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경찰관의 이름을 밝히고, 경관 번호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관은 끝까지 제시하지 않았고, 내가 계속 요구하자 나를 수갑 채워 끌고 갔다.”
그런데 백인 경관의 말은 좀 다르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후, 잠시 확인할 게 있으니 문 밖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그러자 교수가 ”왜 내가 흑인이어서 그러냐?“ 고 인종차별을 운운하며 흥분해서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러면 체포될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래서 체포했다”
어쨌든 기세 좋게 하버드대 교수를 수갑 채워 끌고갔던 경찰은, 아무래도 찝찝했던지, 곧 무죄 방면하고 석방했지만, 이번엔 교수가 가만 있지 않았다. 워낙 말 잘하는 유명 교수인지라, 매스컴에 나와서 이 문제는 고질적인 미국경찰관의 인종차별에 비롯된 것이며,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기가 하버드 백인 교수였다면 과연 자기를 수갑 채워 끌고 갔겠는냐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경관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했다. 인종적 선입견을 가진 미국의 보통 백인들이 어떻게 속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흑인들은 이 사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흥분했다. 하버드대 교수 조차도 자기 집에서 아무 죄도 없이 잡혀간 이 사건은, 빈민가의 교육 받지 못한 흑인들이 경찰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극명하게 입증해 주는 본보기라고 주장했다. 사실 그전부터 미국 경찰은 인종차별로 악명높다, 특히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경찰의 편견 때문에, 항상 흑인 사회와 경찰 간에 갈등이 많다.
백인 경관은 자기 잘못이 없기 때문에 교수에게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외형적으로는 대체로 백인 경찰에게 좀 불리하게 돌아가던 사건이, 오바마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직설적으로 개입하면서 사건이 갑자기 커지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 버렸다. 보스턴 내에서만 주로 가십거리로 인구에 회자하던 사건이, 미국 전체의 사건으로 확산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이 사건은 내 친구이기도 한 흑인 교수가 개입된 사건이라 내가 편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라고 미리 전제하고 나서, 신분이 확인된 교수를 자기 집에서 수갑을 채워 끌고 간 일은 ”stupid" 한 일이다“ 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백악관에 살고 있으니 괜찮지만, 만약 시카고의 옛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따려고 하다간 수갑이 아니라, 바로 총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매우 영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매우 신중하게 발언하는 오바마 인데, 외국인인 내가 봐도 좀 심한 단어인 stupid 란 말을 자국 경찰에게 공개적으로 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다 어떠한 정치인도 감히 개입하기 터부시 하는 인종 관련 사안 아닌가?
오바마가 이 사건에 개입하자, 오바마에게 계속 밀리고 있던 공화당의 극우파들이 이때구나 하고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서 흑백 간의 인종갈등이 벌어지면, 무조건 오바마가 손해다. 왜냐면 오바마는 자신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아직까지는 괜찮은 지금 얼른 의료보험 개혁을 해치우려고 하는데 비해, 의료보험개혁을 반대하지만, 반대할 명분이 없던 공화당에서는 그냥 무작정 미루기 전술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국민적 관심이 의료보험에서 인종문제로 가면 손해 볼 게 없다. 어차피 백인 수가 흑인 수보다 많기 때문에, 흑백 대립이 심화되면, 불안을 느끼는 백인 중산층들이 대거 공화당 지지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Stupid" 라는 말을 들은 해당 경찰관, 경찰 노조, 경찰 지휘관도 발끈했다. 특히 해당 경찰관은 대통령이 쓸데없이 잘 모르는 동네 이슈에 끼어들었다고 직설적으로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아무리 봐도 오바마에게 상황이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이었다. 의료보험 개혁은 지지부진한데, 이슈가 엉뚱한 데로 빠진데다가, 흑인들은 흑인들대로, 경찰은 경찰 대로 불만이 높아져가고, 일반 백인 시민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니, 오바마의 지지기반 자체가 흔들릴 판이었다.
그런데 이 난국에서 오바마의 대응이 제법 멋있다. 바로 오늘 오후, 대통령이 직접 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통화한 것이다. 약 5분간 통화하고 난 후, 사건의 당사자인 백인 경찰관과 흑인 교수 둘 다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셋이 함께 맥주를 마시며 오해를 풀고 화해하자는 것이다. 경찰관도 동의했고 교수도 동의했다. 분위기를 보니, 해당 경찰관은 조금 감격한 것 같다. 대통령과 직접 통화까지 하고, 초대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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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진행된 사건의 개요를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과연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네요. 오바마의 희망대로, 이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고, 국민의 관심이 다시 의료보험 개혁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계속 이 문제가 일파만파 번져서 오바마 입장에서는 실익이 별로 없는 흑백 갈등 문제가 재점화될지...
어쨌든 이 사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음 생각은 저의 개인적 편견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요새 한국 경찰은 약한 자는 짓밟고 군림하고, 인권 침해를 밥먹듯이 하지만, 강한 권력자에게는 개처럼 비굴하게 굽신거린다. 위에서 시키면 찍소리도 못하고, 개처럼 복종하다.
그런데 미국 경찰도 약한 자에게 군림하고, 인권 무시하는 것은 똑같다. (흑인이면 교수건 뭐건 무조건 일단 잡아간다. 미국 최고 지성이라도 흑인이고 경찰한테 대들면 잡아간다) 하지만 미국 경찰은 강한 자에게도 제법 잘 소신껏 개긴다. (알고보니 대통령 친구를 잡아간 거다. 그래도 끝까지 사과 안하고, 자기 할 일 했다고 개긴다. 대통령이 직접 “바보”같이 행동했다고 했는데도, 맞장 뜨면서 대통령은 X도 모르면서 나서지 말라고 개긴다. 이 정도면 미국 경찰은 강한 자에게도 제법 용기있게 맞설 줄 안다)
만약 한국에서 일개 경사가, 이명박 대통령 친한 친구를 수갑 채워서 끌고 간다면?, 대통령의 말에 공개적으로 반발한다면? 한국 같으면 벌써 파면되지 않았을까? 미국 대통령은 죄도 없는 자기 친구한테 수갑 채우고, 자기 말에 빨끈하고 개기고 있는 일개 경관에게 참 따뜻하게 대해준다. 직접 전화 걸어 통화하면서, 같이 맥주 마시면서 화해를 주선한다. 지금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 얘긴가?
아직까지 한국에는 미국처럼 인종문제가 심하지 않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공론화가 덜 되어 그렇지, 사실 한국에도 인종문제가 숨겨져 있다. 지금 농촌에 가보면, 동남아시아에서 데려온 여자들과 그들이 낳은 많은 혼혈아들이 있다. 공장 주변에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안산 같은 곳은 아예 외국인 집단 주거지가 크게 형성되어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인종편견이 과연 미국 백인들보다 적을까? 미국에서 정상적 보통 백인들은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절대로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하다가는 완전 꼴통으로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리 한국사람들은 유색인종을 어떻게 대하는가? 백인은 우러러보고,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은 깔보지 않는가? 인기 TV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 에서도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보기 어렵다.
지금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인종 문제가 큰 골칫거리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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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었는데~ 사건의 전말이 그렇게 되는 거였군요.
2009/07/25 19:14아주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데, 아주 재미있네요.
2009/07/28 10:22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우리나라의 백인우월주의 부분은 백분 공감합니다. 농촌뿐 아니라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에 대한 차별도 분명히 문제입니다.
2009/07/30 02:09차별 자체는 조금 순화되겠지만, 그것이 고착화되어간다면 큰 구조적 문제가 되겠지요.
2009/08/01 14:07우리나라 인종문제 심각합니다. 단, 웃기는 양상인데, 백인은 이유없이 우대를 받는 차별을 받고, 그 외는 이유없이 박대를 받는 차별을 받습니다. 다만, 이런 양상을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도 않고 문제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조용하고 인종차별이 없거나 적은 것처럼 보일뿐입니다. 매년 혼인하는 쌍을 10쌍이라고 하면 게 중 2쌍은 외국인과 혼인하는 거라는데, 이들이 나은 자식들은, 즉 혼혈아, 이제 제일 빠른 세대는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융화하여 그저 조금 달리 생긴 우리가 될지, 아니면 2등국민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 경찰이 저럴 수 있는 건, 연방 단위 정치인과 지자체 경찰과 대립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뿐만 아니라 당연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stupid라는 강한 단어를 썼다는 건 놀랍지만 stupid하다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2009/07/31 05:54백인 중에도 그런 차별을 굉장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더군요. 혜택 받는 것이 불편하다는게 아니라 자신들이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다고 느끼는 듯 해요. 특히 빤히 쳐다보는 것, 함부로 말하는 것 등.
2009/08/01 14:02"외국인 관광객 탑승"이라고 쓰인 버스를 볼 때마다, 무슨 뜻일까 생각을 합니다. 자동차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조심해라? 특별한 분들이 관광을 하시니까 교통법규를 안 지켜도 잡지 말아라? 아무데나 주차할 특권이 있다? 하여튼 그 간판을 보면 외국인이 정상인이 될 수 없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09/08/01 14:35(그 간판 교통법규상 아무 의미 없는 것 맞죠? 작년에 운전면허 시험 볼 때 "예외"에 그런 거 없었는데...)
뉴스에서 본 것과 이렇게 전해듣는 것과 상당히 느낌이 다르군요. 굉장히 와 닿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한국경찰 미국경찰 비교는 재미있었습니다.
2009/08/01 14:07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 사건이 발생한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 시는 하버드 대학이 소재한 곳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도시입니다. 또 이 도시의 시장이 흑인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텍사스나 미국 내륙 지방 같은 보수적인 도시의 사정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9/08/22 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