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지에서 저를 취재해 갔습니다. 벌써 5개월쯤 전의 일이군요. 본래 제 개인에 관한 인터뷰는 응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한겨레에서 '사람'이라는 꼭지에 싣겠다고 피할 수 없는 요청을 해온 적이 있어서 응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제 개인에 대한 것 보다는 계속 앰네스티와 한국지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더니 나중에 '사람' 꼭지로는 부적당하다면서 일반기사로 내보낸 적이 있지요. "인권은 매일 먹는 밥 같은 것" - 한겨레
이번에는 매체의 특성도 있고, 현 정권의 집권 1주년이 좀 지난 시점에서 앰네스티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보다 자유롭게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큰 맘 먹고 임했습니다. 죄송하게도 시골에 있는 제 근무처까지 오셔야 했지요. 원래대로라면 4월호 쯤에 실려야 했는데, 소식이 감감이라 몇 달 기다리다가 알아보니 말지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더군요. 저는 이래저래 이런 식의 개인인터뷰와는 잘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기사내용이 어떨지 궁금해 민중의 소리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용케 구석에 묻혀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걸 제 블로그에 옮기는 것이 좀 쑥스러워서, 담당기자님의 허락을 받고도 꽤 오래 묵혀두고 있었는데 짤림방지를 겸해 올려봅니다. 기사의 전재를 흔쾌히 허락해주신 이동권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 말지가 빨리 정상화되기를 기원합니다.
기사원문
참, 기사내용 중에 완전히 잘못된 오타가 한 군데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앰네스티가 엠네스티로 표기된 것은 말고요.
이번에는 매체의 특성도 있고, 현 정권의 집권 1주년이 좀 지난 시점에서 앰네스티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보다 자유롭게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큰 맘 먹고 임했습니다. 죄송하게도 시골에 있는 제 근무처까지 오셔야 했지요. 원래대로라면 4월호 쯤에 실려야 했는데, 소식이 감감이라 몇 달 기다리다가 알아보니 말지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더군요. 저는 이래저래 이런 식의 개인인터뷰와는 잘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기사내용이 어떨지 궁금해 민중의 소리 웹사이트를 뒤지다가 용케 구석에 묻혀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이걸 제 블로그에 옮기는 것이 좀 쑥스러워서, 담당기자님의 허락을 받고도 꽤 오래 묵혀두고 있었는데 짤림방지를 겸해 올려봅니다. 기사의 전재를 흔쾌히 허락해주신 이동권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월간 말지가 빨리 정상화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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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사내용 중에 완전히 잘못된 오타가 한 군데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앰네스티가 엠네스티로 표기된 것은 말고요.
지극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고은태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
이동권 기자 suchechon@voiceofpeople.org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6개월 남짓. 역사는 거꾸로 흘러갔다.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촛불집회 탄압, 복면·마스크 집회금지, 미네르바 구속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사형집행 검토, 이주노동자 과잉 단속, 대체복무제 무산 등 일일이 열거 하기도 힘든 일들이 벌어지면서 한국의 민주·인권은 후퇴의 후퇴를 거듭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만큼은 살릴 것이라고 믿었던 국민의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서민들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혔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예견됐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정국에서 현실이 된 일이었다. 14세 소년의 머리가 경찰의 방패에 찍혔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거나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연행 당했으며, 집회 참가자에 대한 표적 수사와 구속이 벌어졌다.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주의가 단 몇 개월 만에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뜻밖의 손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촛불집회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조사하러 온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조사관이다. 조사관은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자의적인 체포나 구금에 대한 시정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면서 '지난 20년 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성과가 촛불집회 탄압으로 후퇴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용산철거민 폭력살인진압'에서부터 민주·인권을 유린하는 MB악법 강행 처리, 故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진압까지, 이명박 정부의 초법적인 인권탄압이 계속 되고 있는 지금 머릿속에서 ‘엠네스티’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민중의소리는 고은태(47)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을 만나 엠네스티에 대한 궁금증과 한국의 민주·인권이 말살돼 가고 있는 현주소를 진단해봤다.
고은태 이사장은 “현재 한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기조는 대단히 우려스럽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지난 행적을 인권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의 임무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며, 경제발전에서도 인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태도변화를 간절하게 촉구했다.
아래는 고은태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세상이 어지러워서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시죠.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십니까?
엠네스티 한국지부에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한국지부가 크게 성장했고, 대외적으로도 요구사항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에 대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우울합니다. 우리 사회가 20여 년 동안 쌓아왔던 여러 가지 인권 기준들이 이렇게 쉽게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후퇴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
-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로 불거진 촛불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고,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무력진압과 인권탄압은 국제적 이슈가 되기 충분했습니다. 엠네스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엠네스티의 지적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엠네스티는 촛불집회에 관심을 표명하고 계속 지켜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사관이 파견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강경 발언이 쏟아지더니, 6월 31일 공포스러운 진압이 시작됐습니다. 엠네스티 회원 중에 겉모습만으로도 경제적,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어린 자녀 둘과 집회에 나갔다가 아이들 앞에서 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며 기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력을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분에게 또 나가시겠느냐고 물으니까 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경찰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면서요. 이런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 정부는 배후가 있다고 했고, 탄압했습니다.
결국 엠네스티에서 조사관을 파견했습니다. 정부와 경찰은 엠네스티 활동에 신경을 썼습니다. 조사단이 와 있는 동안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가시적인 개선효과는 없었지만 현재 정부가 엠네스티, 국제여론에 무관심 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수위 때 국가인권위원회의 무력화 시도, 촛불집회 때의 명확한 강경진압, 이후 참여자들에 대한 조사 및 사법처리, 마스크·복면시위 금지 등 집회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또 인터넷·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시도, 용산 참사에서 경찰이 보여준 공격적인 진압과 그 뒤처리 과정, 용산 범대위 철거민에 대한 수배 및 체포영장 발부, 이런 일련의 사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부라도 위와 같은 일들이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도적·현실적으로 평화적인 집회·시위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 정말로 세계가 비웃을만한 후진적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네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어떠했습니까?
국제 엠네스티는 조사관 파견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연례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무국장들이 탄원편지를 보냈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이례적으로 조사관이 파견됐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관심과 우려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가자' 정도가 터져야 조사관이 갑니다. 세계의 많은 NGO, 인권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촛불집회가 아직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 헌법은 인본주의와 국민주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MB악법 날치기'를 강행하고 있고, 서민보다는 1%의 부자들과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인권유린과 공권력의 폭력이 더욱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모든 법은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인권에 대한 해법이나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법이라고 해도 국제적 인권질서와 시스템에 맞춰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국민의 행복과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제도를 변화시키고,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 1987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벌인지 22주년이 됐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면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인권도 땅에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시민의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의 (시민의식이)높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보려는 객관적인 시각이 부족합니다. 인권의식이 있으려면 인권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국제법상 인권교육은 의무입니다. 이러한 시민의식과 작은 노력들이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엠네스티, 국가보안법과 인권문제 집중한다
- 엠네스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로고가 철조망 같은 데 둘러싸인 촛불이었습니다. 1961년 6월 지역그룹 회원인 다이아나 레드하우스(Diana Redhouse)에 의해 도안됐다고 들었는데요.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로고에는 엠네스티가 출발할 때의 이념이나 지향, 방법론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의미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어둠속에 숨겨진 인권침해를 겉으로 드러내서 중단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이들은 엠네스티가 너무 온건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리 억압적인 정권이라고 해도 자신의 잘못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인권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의 존재가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촛불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듯이 아직도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권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 엠네스티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을 방지하고 종식시키기 위해, 또 피해자들의 권익보호와 인권신장을 위해 힘쓰는 순수 민간차원의 인권운동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힘을 쏟고 있으십니까?
엠네스티는 세계의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과 정치적 수인들에 대한 공정하고도 신속한 재판 촉구합니다. 또 사형·고문,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나 형벌·처형을 종식하고 납치·고문, 수인에 대한 살해, 임의 처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난민을 보호하고, 대인지뢰를 반대하며, 인권교육 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엠네스티는 구호단체도, 개발단체도,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국가의 압박에 대항하거나 부당한 제도에 저항하는 일을 돕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한 전 세계적으로 ‘존엄성요구 캠페인(Demand Dignity)’을 시작합니다. 한국 지부에서는 역량문제가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엠네스티의 활동으로 승리를 일궈냈던 사례가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관타나모가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미국은 법에 의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골적으로 관타나모를 선택했습니다. 미국에 있으면 수용소 내에서의 인권문제에 대해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는 수인에 대한 각종 학대가 저질러졌고, 정당한 재판이나 이유 없이 구금과 고문이 벌어졌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가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죠. 수용소 존재 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겉으로 인권을 내세우는 미국이 뒤에 있다는 점, 또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고문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미국 고위층에서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문을 몰래 저지르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일인데, 가혹행위나 고문을 공공연하게 인정한다는 것은 인권 규칙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엠네스티는 관타나모 캠페인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수용자가 입는 오렌지색 복장을 하고 전 세계에서 캠페인을 했죠. 아직 폐쇄되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폐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승리적인 일입니다.
- 엠네스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 지부의 수입 중 95% 이상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입니다. 평균 1인당 1만원이 안 됩니다. 보통 5천~1만원입니다. 현재 회원수가 1만 명 조금 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입은 이벤트나 기금모금을 통해 만들고, 작년에는 기업 기금도 조금 받았습니다. 기업에서 후원을 많이 해주면 좋겠지만 현재는 거의 회비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엠네스티는 정부에서는 절대로 지원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교육에 대해서는 받습니다. 국민에게 인권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수입은 ‘국제운동’에서 받는 지원금입니다. 전체 예산의 15% 정도입니다. 각국 지부에서 모은 돈을 ‘분담금’ 형식으로 국제운동에 보내면, 국제운동에서 사업비로 한국지부에 보내주고 있습니다.
- 엠네스티 국제지부 중에서 한국지부의 활동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활동가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까?
전업활동가가 10여 명 정도 됩니다. 저는 회원들도 모두 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만. 엠네스티 한국 지부는 우리 사회에서 재밌는 실험이 될 것입니다. 활동가의 50%는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고, 나머지 50%는 회사나 일반 직장에서 근무하다 좋은 일을 해보겠다고 온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반씩입니다.
- 엠네스티에서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문제와 이에 대한 계획이 궁금합니다.
엠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오세철 교수님 등 여러차례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아니면 현재의 독소조항을 완전히 개정하는 것은 한국의 인권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엠네스티는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힘을 집중하고 싶은데 역량이 안되서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단순히 한국 지부가 아니라 아시아 엠네스티의 문제입니다.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의 엠네스티가 논의하고 활동하면 임팩트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이 괜찮은 편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방식과 마인드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이주노동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봅니다.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보내는 나라에서 한국 정부에 항의 못합니다. 정부에서 쿼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양국 엠네스티가 연대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게 좋다고 봅니다. 작년에는 못했지만 올해 4월 총회가 끝나면 시작될 것입니다.
사형제도 시행되면 한국 인권 좌초된다
- 이사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왜 엠네스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1972년 대학에 들어가면서입니다. 학력고사를 보고 놀고 있는데 교회에 계신 분이 권유했습니다. 그때 저는 엄혹한 시대에 청년이 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나라나 배부른 나라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까 데모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모임이 만날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들은 왜 하냐고 말렸지만, 우리가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우리도 남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엠네스티 활동과 거기서 키워진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에 도움이 될 것이고 믿었습니다. 또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부족했던 국제적 시야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활동하시면서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엠네스티 자료를 번역해서 책을 출간하는 일이 있는데, 그 책을 들고 가다 경찰한테 잡혀갔습니다. 자료 첫 문장에 ‘억압적인 정부’라는 글귀가 있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그 책은 편지쓰기 안내서였습니다. ‘외국에 편지 쓸 때 이렇게 쓰세요’ 라는 내용이죠. 그 뒤로 어머니께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집에 형사가 찾아와서 협박하고, 엠네스티 활동하면 취직도 못한다고 겁을 줬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저한테 한 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나중에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 사회에는 한국 중심주의적인 시각이 뿌리깊이 박혀있습니다. 과거에는 국제연대나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돕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지요. 용기 있는 사람은 반정부투쟁을 하고, 나머지는 인권투쟁을 하며 잡혀갔고, 그때 저는 많이 외로웠습니다.
- 이사장님께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의 의견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무실에 전화가 옵니다. '왜 대응을 안 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화입니다. 촛불집회때는 메일박스가 다운될 정도로 요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책적 또는 역량부족 등을 이유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특히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 문제로 사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갈 때면 더욱 그럴 듯 싶습니다.
중학교 때 사형 제도를 알게 되면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엠네스티 본부에 있을 때 60세 노인이 11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곧 사형을 받게 됐는데, 그때 사형시키지 말라고, 이따위 놈을 위해 살려달라고 편지를 보내야하나, 이놈 진짜 나쁜 놈 아니냐는 생각으로 망설였습니다. 엠네스티 들어와서 제일 크게 고민한 일이었습니다. 근데 곧바로 이 문제가 정리됐다. 이 사람을 살려서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죽는 것을 막고, 국가가 날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죠. 결코 애틋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강호순 사건으로 사형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엠네스티는 사형제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바로 대응하지도 못했는데 언론에서는 엠네스티를 인용해서 기사화했고, 회원 몇 분이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악플도 많았습니다. 회원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고, 다행스럽게도 많이 분들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사형제가 이슈가 될 때는 항상 잔인한 살인마가 등장할 때입니다. 평상시에는 이슈가 안 됩니다. 사형에 대한 여론이 최악일 때 여론조사나 TV토론이 벌어집니다. 전향적으로 생각할 때는 안 합니다. 분명 시민들의 분노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볼까 하면서 정치적인 행보나 조처를 취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정정당당한 태도라고 보기 힘듭니다.
- 정치적인 행보·조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사형을 다양한 국면전환용으로 이용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일부가 비공식적으로 사형집행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왜 이런 살인사건이 날 때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는지, 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인한 증거가 지금은 나오는데 왜 그 때는 찾지 못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경찰의 치안능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했습니다.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입니다. 국민 여론이 나쁘다고 해서 사형을 집행해보자, 이것은 국정 책임자들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 사형제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보니, 민주·인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엠네스티의 강한 열망이 느껴집니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OECD에 가입한 30개국 중에서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그런 식으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해야 합니까.(웃음) 한국은 크게 보면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다시 사형을 실시하면 한국의 인권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때까지 그런 나라도 극히 적었습니다. 한국이 거기에 끼어드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상 골목대장은 못합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얻은 게 있다면 아시아에서 인권지도국이 됐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한심한 수준이지만 한국은 인권의 교두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발언권이 있습니다. 군사·경제적으로 동북아의 중심 국가는 아니지만 인권에 대해서는 외교적 힘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고 사형제를 시행하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자원을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민중의소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한국지부가 몇 년 전만해도 뒤처지고 고립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노력해서 지금 발 맞춰 가고 있고, 국제 사회에 한국지부의 의견이 경청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시민의식, 연대운동을 국제화 시켜나갈 때 우리 내부의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손잡고 함께 찾는 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전 세계 인류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작은 분야라도 참여하고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면 안 됩니다. 참여하고 조직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는 국제 엠네스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추가돼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고은태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
이동권 기자 suchechon@voiceofpeople.org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6개월 남짓. 역사는 거꾸로 흘러갔다.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촛불집회 탄압, 복면·마스크 집회금지, 미네르바 구속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사형집행 검토, 이주노동자 과잉 단속, 대체복무제 무산 등 일일이 열거 하기도 힘든 일들이 벌어지면서 한국의 민주·인권은 후퇴의 후퇴를 거듭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만큼은 살릴 것이라고 믿었던 국민의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서민들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혔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예견됐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정국에서 현실이 된 일이었다. 14세 소년의 머리가 경찰의 방패에 찍혔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거나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연행 당했으며, 집회 참가자에 대한 표적 수사와 구속이 벌어졌다.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주의가 단 몇 개월 만에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뜻밖의 손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촛불집회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조사하러 온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조사관이다. 조사관은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자의적인 체포나 구금에 대한 시정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면서 '지난 20년 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성과가 촛불집회 탄압으로 후퇴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용산철거민 폭력살인진압'에서부터 민주·인권을 유린하는 MB악법 강행 처리, 故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진압까지, 이명박 정부의 초법적인 인권탄압이 계속 되고 있는 지금 머릿속에서 ‘엠네스티’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 민중의소리는 고은태(47) 엠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을 만나 엠네스티에 대한 궁금증과 한국의 민주·인권이 말살돼 가고 있는 현주소를 진단해봤다.
고은태 이사장은 “현재 한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기조는 대단히 우려스럽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지난 행적을 인권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의 임무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며, 경제발전에서도 인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태도변화를 간절하게 촉구했다.
아래는 고은태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세상이 어지러워서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시죠.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계십니까?
엠네스티 한국지부에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한국지부가 크게 성장했고, 대외적으로도 요구사항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에 대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우울합니다. 우리 사회가 20여 년 동안 쌓아왔던 여러 가지 인권 기준들이 이렇게 쉽게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후퇴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
-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로 불거진 촛불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고,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무력진압과 인권탄압은 국제적 이슈가 되기 충분했습니다. 엠네스티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엠네스티의 지적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엠네스티는 촛불집회에 관심을 표명하고 계속 지켜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사관이 파견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강경 발언이 쏟아지더니, 6월 31일 공포스러운 진압이 시작됐습니다. 엠네스티 회원 중에 겉모습만으로도 경제적,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어린 자녀 둘과 집회에 나갔다가 아이들 앞에서 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며 기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폭력을 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분에게 또 나가시겠느냐고 물으니까 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경찰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면서요. 이런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 정부는 배후가 있다고 했고, 탄압했습니다.
결국 엠네스티에서 조사관을 파견했습니다. 정부와 경찰은 엠네스티 활동에 신경을 썼습니다. 조사단이 와 있는 동안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가시적인 개선효과는 없었지만 현재 정부가 엠네스티, 국제여론에 무관심 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수위 때 국가인권위원회의 무력화 시도, 촛불집회 때의 명확한 강경진압, 이후 참여자들에 대한 조사 및 사법처리, 마스크·복면시위 금지 등 집회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또 인터넷·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시도, 용산 참사에서 경찰이 보여준 공격적인 진압과 그 뒤처리 과정, 용산 범대위 철거민에 대한 수배 및 체포영장 발부, 이런 일련의 사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부라도 위와 같은 일들이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도적·현실적으로 평화적인 집회·시위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 정말로 세계가 비웃을만한 후진적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네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어떠했습니까?
국제 엠네스티는 조사관 파견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연례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무국장들이 탄원편지를 보냈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이례적으로 조사관이 파견됐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관심과 우려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가자' 정도가 터져야 조사관이 갑니다. 세계의 많은 NGO, 인권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촛불집회가 아직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 헌법은 인본주의와 국민주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MB악법 날치기'를 강행하고 있고, 서민보다는 1%의 부자들과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인권유린과 공권력의 폭력이 더욱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모든 법은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인권에 대한 해법이나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내법이라고 해도 국제적 인권질서와 시스템에 맞춰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국민의 행복과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제도를 변화시키고,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 1987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벌인지 22주년이 됐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면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인권도 땅에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시민의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의 (시민의식이)높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보려는 객관적인 시각이 부족합니다. 인권의식이 있으려면 인권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국제법상 인권교육은 의무입니다. 이러한 시민의식과 작은 노력들이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엠네스티, 국가보안법과 인권문제 집중한다
- 엠네스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로고가 철조망 같은 데 둘러싸인 촛불이었습니다. 1961년 6월 지역그룹 회원인 다이아나 레드하우스(Diana Redhouse)에 의해 도안됐다고 들었는데요.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로고에는 엠네스티가 출발할 때의 이념이나 지향, 방법론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의미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어둠속에 숨겨진 인권침해를 겉으로 드러내서 중단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이들은 엠네스티가 너무 온건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리 억압적인 정권이라고 해도 자신의 잘못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인권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의 존재가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촛불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듯이 아직도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권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 엠네스티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을 방지하고 종식시키기 위해, 또 피해자들의 권익보호와 인권신장을 위해 힘쓰는 순수 민간차원의 인권운동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힘을 쏟고 있으십니까?
엠네스티는 세계의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과 정치적 수인들에 대한 공정하고도 신속한 재판 촉구합니다. 또 사형·고문,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나 형벌·처형을 종식하고 납치·고문, 수인에 대한 살해, 임의 처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난민을 보호하고, 대인지뢰를 반대하며, 인권교육 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엠네스티는 구호단체도, 개발단체도,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국가의 압박에 대항하거나 부당한 제도에 저항하는 일을 돕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한 전 세계적으로 ‘존엄성요구 캠페인(Demand Dignity)’을 시작합니다. 한국 지부에서는 역량문제가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엠네스티의 활동으로 승리를 일궈냈던 사례가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관타나모가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미국은 법에 의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골적으로 관타나모를 선택했습니다. 미국에 있으면 수용소 내에서의 인권문제에 대해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는 수인에 대한 각종 학대가 저질러졌고, 정당한 재판이나 이유 없이 구금과 고문이 벌어졌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가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죠. 수용소 존재 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겉으로 인권을 내세우는 미국이 뒤에 있다는 점, 또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고문이나 인권침해에 대해 미국 고위층에서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문을 몰래 저지르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일인데, 가혹행위나 고문을 공공연하게 인정한다는 것은 인권 규칙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엠네스티는 관타나모 캠페인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수용자가 입는 오렌지색 복장을 하고 전 세계에서 캠페인을 했죠. 아직 폐쇄되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폐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승리적인 일입니다.
- 엠네스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 지부의 수입 중 95% 이상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입니다. 평균 1인당 1만원이 안 됩니다. 보통 5천~1만원입니다. 현재 회원수가 1만 명 조금 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수입은 이벤트나 기금모금을 통해 만들고, 작년에는 기업 기금도 조금 받았습니다. 기업에서 후원을 많이 해주면 좋겠지만 현재는 거의 회비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엠네스티는 정부에서는 절대로 지원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교육에 대해서는 받습니다. 국민에게 인권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수입은 ‘국제운동’에서 받는 지원금입니다. 전체 예산의 15% 정도입니다. 각국 지부에서 모은 돈을 ‘분담금’ 형식으로 국제운동에 보내면, 국제운동에서 사업비로 한국지부에 보내주고 있습니다.
- 엠네스티 국제지부 중에서 한국지부의 활동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활동가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까?
전업활동가가 10여 명 정도 됩니다. 저는 회원들도 모두 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만. 엠네스티 한국 지부는 우리 사회에서 재밌는 실험이 될 것입니다. 활동가의 50%는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고, 나머지 50%는 회사나 일반 직장에서 근무하다 좋은 일을 해보겠다고 온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반씩입니다.
- 엠네스티에서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문제와 이에 대한 계획이 궁금합니다.
엠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오세철 교수님 등 여러차례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아니면 현재의 독소조항을 완전히 개정하는 것은 한국의 인권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엠네스티는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힘을 집중하고 싶은데 역량이 안되서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단순히 한국 지부가 아니라 아시아 엠네스티의 문제입니다.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의 엠네스티가 논의하고 활동하면 임팩트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이 괜찮은 편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방식과 마인드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이주노동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봅니다.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보내는 나라에서 한국 정부에 항의 못합니다. 정부에서 쿼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양국 엠네스티가 연대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게 좋다고 봅니다. 작년에는 못했지만 올해 4월 총회가 끝나면 시작될 것입니다.
사형제도 시행되면 한국 인권 좌초된다
- 이사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왜 엠네스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까.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1972년 대학에 들어가면서입니다. 학력고사를 보고 놀고 있는데 교회에 계신 분이 권유했습니다. 그때 저는 엄혹한 시대에 청년이 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나라나 배부른 나라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까 데모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모임이 만날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들은 왜 하냐고 말렸지만, 우리가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우리도 남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엠네스티 활동과 거기서 키워진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에 도움이 될 것이고 믿었습니다. 또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부족했던 국제적 시야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활동하시면서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엠네스티 자료를 번역해서 책을 출간하는 일이 있는데, 그 책을 들고 가다 경찰한테 잡혀갔습니다. 자료 첫 문장에 ‘억압적인 정부’라는 글귀가 있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그 책은 편지쓰기 안내서였습니다. ‘외국에 편지 쓸 때 이렇게 쓰세요’ 라는 내용이죠. 그 뒤로 어머니께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집에 형사가 찾아와서 협박하고, 엠네스티 활동하면 취직도 못한다고 겁을 줬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저한테 한 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나중에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엠네스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 사회에는 한국 중심주의적인 시각이 뿌리깊이 박혀있습니다. 과거에는 국제연대나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돕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지요. 용기 있는 사람은 반정부투쟁을 하고, 나머지는 인권투쟁을 하며 잡혀갔고, 그때 저는 많이 외로웠습니다.
- 이사장님께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의 의견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무실에 전화가 옵니다. '왜 대응을 안 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화입니다. 촛불집회때는 메일박스가 다운될 정도로 요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책적 또는 역량부족 등을 이유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특히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 문제로 사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갈 때면 더욱 그럴 듯 싶습니다.
중학교 때 사형 제도를 알게 되면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엠네스티 본부에 있을 때 60세 노인이 11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곧 사형을 받게 됐는데, 그때 사형시키지 말라고, 이따위 놈을 위해 살려달라고 편지를 보내야하나, 이놈 진짜 나쁜 놈 아니냐는 생각으로 망설였습니다. 엠네스티 들어와서 제일 크게 고민한 일이었습니다. 근데 곧바로 이 문제가 정리됐다. 이 사람을 살려서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죽는 것을 막고, 국가가 날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죠. 결코 애틋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강호순 사건으로 사형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엠네스티는 사형제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바로 대응하지도 못했는데 언론에서는 엠네스티를 인용해서 기사화했고, 회원 몇 분이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악플도 많았습니다. 회원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고, 다행스럽게도 많이 분들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사형제가 이슈가 될 때는 항상 잔인한 살인마가 등장할 때입니다. 평상시에는 이슈가 안 됩니다. 사형에 대한 여론이 최악일 때 여론조사나 TV토론이 벌어집니다. 전향적으로 생각할 때는 안 합니다. 분명 시민들의 분노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볼까 하면서 정치적인 행보나 조처를 취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정정당당한 태도라고 보기 힘듭니다.
- 정치적인 행보·조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사형을 다양한 국면전환용으로 이용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일부가 비공식적으로 사형집행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왜 이런 살인사건이 날 때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는지, 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인한 증거가 지금은 나오는데 왜 그 때는 찾지 못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경찰의 치안능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했습니다.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입니다. 국민 여론이 나쁘다고 해서 사형을 집행해보자, 이것은 국정 책임자들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 사형제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보니, 민주·인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엠네스티의 강한 열망이 느껴집니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OECD에 가입한 30개국 중에서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그런 식으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해야 합니까.(웃음) 한국은 크게 보면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다시 사형을 실시하면 한국의 인권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때까지 그런 나라도 극히 적었습니다. 한국이 거기에 끼어드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상 골목대장은 못합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얻은 게 있다면 아시아에서 인권지도국이 됐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한심한 수준이지만 한국은 인권의 교두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발언권이 있습니다. 군사·경제적으로 동북아의 중심 국가는 아니지만 인권에 대해서는 외교적 힘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고 사형제를 시행하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자원을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민중의소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한국지부가 몇 년 전만해도 뒤처지고 고립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노력해서 지금 발 맞춰 가고 있고, 국제 사회에 한국지부의 의견이 경청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시민의식, 연대운동을 국제화 시켜나갈 때 우리 내부의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손잡고 함께 찾는 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전 세계 인류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작은 분야라도 참여하고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면 안 됩니다. 참여하고 조직하는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는 국제 엠네스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추가돼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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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개 찾고는 세는 것 포기... 그런데 대학교 몇 살에 가셨어요?
2009/08/06 02:34잘못된 내용이라고 썼다가 기사 쓰신 분께 실례인 것 같아 오타라고 고쳤더니만... 바로 잡혔군요.
2009/08/06 03:26말씀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상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뭐 교정볼 거 있으면 상품으로 보내 주세요. 학회지 편집할 때 "타고난 교열자" 뭐 이런 말 들었다는... *^^*
2009/08/06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