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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는 영결식의 날이 밝습니다. 처음 6일장이라고 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너무 짧아서 마음이 허퉁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간직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의 인간적인 모습을 여러분과 나눌까 합니다.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군요. 몇 차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뵐 기회가 있었지만 이 날은 좀 특별했습니다. 사저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응접실에서 한 시간 여 환담을 나누고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음식은 소박하고 정갈했습니다. 이희호여사께서는 음식의 준비에서 내오는 일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직접 신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통역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내외와 저희 쪽 두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은 좋은 대화와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참으로 귀한 말씀을 많이 들었고, 그 지혜와 열정에 감탄했지만, 막상 제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엉뚱한 장면에서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작은 접시에 조그만 과일 조각들이 몇 개 담기어 각자에게 나누어졌습니다. 마침 통역이 대통령 말씀을 통역하고 있던 순간의 일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앞에 있던 과일을 모두 비우시고는 여사님께 뭐라 소곤소곤하셨고, 여사님께서 당신 몫의 과일 한 조각을 대통령님께 덜어드렸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작은 소리로 땡큐라고 말씀하시고는 그 한 조각의 과일을 보시면서 얼마나 밝게 웃으시던지요.

함께 간 일행은 이 장면을 보고는 내외분께서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계신다며 큰 감명을 받은 듯 했고, 저는 대통령님의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한 평생을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으며, 탁월한 정치인으로서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에 큰 업적을 남긴 한 위대한 인간이 작은 과일 한 조각에 그토록 행복해 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일화는 이희호 여사님에 관한 것입니다. 응접실에서 배석자들과 함께 대화가 한참 진행되던 중 식사가 준비되었다며 여사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대화는 그 후로도 꽤 더 이어졌고, 결국 식당으로 가기 위해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우리의 관습에 따르면 자리에서 가장 어른이신 대통령님과 여사님이 응접실에서 나가시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방에서 나가실 듯 했던 여사께서는 갑자기 문 옆의 벽에 착 달라붙으셨습니다. 뒤를 따라나가려던 저는 순간 당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상당히 단단히 달라붙으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먼저 응접실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여사께서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간 후에 응접실 불을 끄고 나오기 위해 옆으로 비켜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한 위인으로서의 김대중 대통령님을 존경했을 뿐, 인간으로서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접견실의 전기스위치를 내리기 위해 저희가 다 나가기를 기다리시는 여사님의 모습과, 점심의 진행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 여사님의 모습에서, 그리고 대통령님의 환한 미소에서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두 분의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두 분이 평생 동안 어떻게 그렇게 큰 용기로 역사를 헤쳐오셨는지, 그리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참 큰 인간, 그러면서도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충실했던 위대한 사람을 떠나 보내는 마음이 애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전세계가 흠모하는, 많은 알려진 거인으로서의 그분의 모습도 존경스럽지만, 저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며 존경한 부부의 모습이 절절히 와 닿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남기고 떠나는 남편, 그리고 한 평생 그의 동지였던 혼자 남은 아내. 오늘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이희호여사께는, 직접 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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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모과 향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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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2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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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 규환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실의 시대죠...지난주에 우리사회는 지혜를 갖춘 어른을 잃었고 개인적으로 저는 장모님을 잃었습니다.
    대소사는 누구랑 상의하고 그분들이 갖고 계셨던 지혜를 이제 빌어 쓸 수 없으니 참 아쉽고 그렇습니다.
    이제 이 독주의 시대에 누가 어른으로 옳은 소릴 할지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영면을 기원합니다. 그나 저나 지부장님 좋은 소식있던데....공유좀 해주세요. 제가 자세한 정보가 없어. 정확안 의미 전달을 못할까봐 올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9/08/23 23:43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장모님 상을 당하셨다니.. 가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좋은 소식은 타이밍을 잡고 있는데... 국장이다 뭐다 올릴 틈이 없네요.

      2009/08/28 21:14
    •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2009/08/2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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