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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군요. 1992년부터 2002년초까지 10년간 한국지부를 튼튼히 지켜주신 분. 그렇지만 지부장이기 이전에 30여년을 한결같이 앰네스티에 애정을 쏟으신 분이십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분들 때문에 한국지부의 오늘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우선 제가 한국지부의 요청에 따라 작성했지만, 너무 길고 성격이 맞지 않아 대부분 잘린 글입니다. 저의 추도사입니다.

1983년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허창수신부님을 처음 만난 것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의 행사장에서입니다. 당시 대학생들이던 저희 그룹 회원들과 만나신 신부님께서 하신 첫 말씀은, '넥타이를 매고 와서 미안합니다.' 였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나이가 벼슬이고 서열이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정치상황만큼이나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던 한국사회에서, 가장 존경 받는 위치에 있고 앰네스티의 까마득한 선배이자 핵심활동가이던 한 서양신부님의 첫 마디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는 허신부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이후 허신부님과 그 분의 그룹이 한국지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고, 여러 문제로 한국지부가 해체되어 저희 그룹이 동그마니 살아남아 고립적으로 활동을 해야 했던 시기에도 허신부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저희는 다시 앰네스티 활동을 더 크게 성장시킬 때가 되었다며 대구까지 허신부님을 찾아갈 수 있었고, 고립되어 있던 두 그룹은 다시 연락을 시작하고 이후 지부를 재건하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2년의 창립총회에서 회원들의 강권으로 지부장을 맡고 10년간, 허신부님은 한국지부의 살아있는 화신이자 기둥이었으며 모든 회원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지부장을 물러난 후에는 집행위원으로 현역에 머무시면서 겸손하게 참여하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지부장을 하실 때나, 그렇지 않으실 때나 20여 년을 함께 활동하면서 저는 허신부님께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없이 소탈하고 자상하시면서도 앰네스티의 정신과 원칙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가 없는, 그런 활동으로 오늘 날의 한국지부가 있게 한 토양과 정신을 만드셨습니다.

오늘 갑자기 허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마음이 너무 허퉁합니다. 얼마 전에 김희진 사무국장님께서 허신부님께 함께 가자고 하셔서 그러자고 한 상태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비록 육체는 병들고 불편하셨지만, 그 꼿꼿한 영혼은 우리 곁에 오래 계셔주실 줄 알았는데 본인이 묻히겠다고 하시던 한국땅도 아닌 고국 독일에서 돌아가셨기에 선종소식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지금 한국지부 회원들 중에서는 허신부님을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안 계시겠지요. 그 분의 업적과 투쟁은 전해드릴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로 사람을 반하게 만드시던 성품과 태도는 전해드릴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찾아간 사람을 환대하시며 맥주 한 병이라도 꼭 꺼내시던 모습, 썰렁하기만 한 유머를 하시고 혼자 좋아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 그리고 까맣게 어린 저희들에게도 늘 맞담배를 하라시던 겸손한 모습의 뒤에는 권위와 위계, 억압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시던 추상 같은 정신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의 한국지부가 있게 하신 허신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함께 할 수 있었음은 큰 영광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인권의 가치와 앰네스티 정신이 전세계에 그리고 대한민국에 더욱 널리 받아들여지게 함으로써 허신부님의 발걸음을 함께 따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9-08-28
고은태

다음은 한국지부에서 회원들에게 전달한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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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 규환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 신부님을 뵙고 함께 활동을 했으니 저도 앰네스티 내에서 오랜된 회원이 되는 거군요...
    국장님의 문자를 받고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숫기가 없어서 인사도 못드리고 먼 발치에서나마 가슴 깊이 올라오는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이제는 신부님이 아시겠죠? 10년 가까이 국제연대활동 주변에 있으면서 늘 허신부님과 배신부님이 다른 우리 운동의 선배들 보다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나고 아팠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도 할머니가 돌아 가실때도 할아버지가 돌아 가실때도 꾹꾹 참았던 눈물이 8월 15일에 소천하시고 염하실때 어찌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나 조부 조모는 워낙 그런 무뚝뚝한 녀석인것을 아셨지만 장모께 왜 잘해드리지 못했나 후회가 되면서 많은 눈물이 났습니다. 선종 소식을 문자로 받고 사무실임에도 여러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눈물이 주룩 주룩 흘렀습니다. 주의 품에서 평안을 이루시고 신부님께서 오래도록 원하셨던 사형제폐지와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인권의 증진을 위해 그 유지를 받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2009/08/28 23:06
    • BlogIcon 안미란  수정/삭제

      꼬 선생님, 우리 한번 상봉해요.
      그런데 저는 금요일만 빼고 매일 저녁 수업이 있으니 참 시간 맞추기가 어렵네요.

      2009/08/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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