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잔인한 살인자를 처벌할 유일한 방법이 사형 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이 잔인하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살인이었던 1975년 인혁당사건 관련자 8명의 학살 주범인 대한민국 사법부는 과연 어떻게 처벌받아야 할 것인가. 길지 않은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 속에서 사형은 반대자를 탄압하는 가장 잔혹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경우에 조차, 사형은 범죄자의 배경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완전히 공평하게 적용되는 형벌이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는 사형제도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또한 사형제도는 합법화된 살인으로써, 인류가 시행하고 있는 제일 잔인한 형벌이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생명권에 대한 침해이다.
사형제도의 이런 추악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위해 노력해 온 전세계 폐지론자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사형제도 없는 세계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명백한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과 33년 전인 1977년에는 전세계에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가 단 16개국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139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사형집행을 하지 않으며 오직 58개국 만이 사형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형제도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은 명확히 변화했으며, 오직 소수의 국가만이 사형제도를 자국민을 처벌하기 위한 필수적인 형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엔 총회 역시 2007년과 2008년에 사형의 집행에 관한 모라토리엄 결의를 채택하면서, “사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며, 사형집행의 중단이 인권의 향상과 점진적 발전에 공헌이 된다는 점을 확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는 결코 이상주의의 결과가 아니며 오랜 시간의 고민과 그 파급효과에 대한 검토에서 나온 극히 현실적인 결론이다.
우리는 흔히, 사형이란 소수의 사형수들과 일반 시민 사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사형은 국가권력과 전체시민 사이의 문제이다. 과연 국가권력의 한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국가권력에는 그 구성원을 죽일 권리가 포함되는지, 국가권력 앞에서 한 인간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점이 어디인지 하는 것이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실체이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형제도는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시금석인 것이다.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을 종식시킨 영웅,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6년 치솟는 범죄율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사형제도의 재도입이 요구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범죄가 이렇게 허용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것은 사형선고를 억제해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형선고가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범죄 그 자체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 문제는 바로 치안서비스에 있는 것이지 사형제도 폐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회에는 여러 차례 사형제도 폐지법안이 제출되었으나, 단 한번의 제대로 된 토의조차 없이 자동 폐기되어 왔다. 부디 이번 국회만큼은 책임을 미루지 말고, 우리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에 걸맞은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헌재판결 전날, 대응방안 마련에 대한 논의요청을 받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실에 갔다가 보다 적극적인 여론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고를 생각하게 된 것인데, 다행히도 경향신문에서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실리게 된 글입니다. 국제집행위원 자격으로는 언론에 공개한 글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 결정이제 국회가 나서서 대한민국의 야만을 걷어내야오늘 헌법 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이 여전히 야만과 동거하고 있음을 보여준 가슴 아픈 판결입니다. 생명은 존엄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귀중한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법이란 공적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살인행위입니다. 사형제가 범죄억제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증적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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