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사형제 합헌결정이 내려지고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의 명단이 알려진 직후부터 민변회장을 지낸 송두환 헌법재판관의 합헌의견에 대해 말들이 많더니 결국 이 문제가 기사화 되었군요. 현장에서 보기에도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민변 회장’ 송두환 재판관 그가 왜… (한겨레신문)
기사 중 일부만 보시겠습니다.
반면 송 재판관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독재를 겪으며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을 제약하는 행태에는 비판적 태도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엘리트 법조인’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송 재판관의 성향을 ‘진보’보다는 ‘자유주의’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형제에 찬성하는 것이 '진보'가 아닌 '자유주의'의 증거일까요?
비록 경제적 자유주의가 가져온 수많은 폐단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집단, 특히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하려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내던질 줄 아는 사람이 자유주의자입니다.
사형폐지는 개인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 생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합법적으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써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적 과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자유주의자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자유주의자에 대한 모욕입니다.
제 개인적 견해로는, 사형제도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 허용 이 세 가지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존재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과제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문제는 동시에 자유주의자들의 의제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나라의 예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유주의의 정치적 반대말은 전체주의일 것입니다. 전체주의는 좌파에도 있을 수 있고, 우파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서구의 예를 보면, 프랑스대혁명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선포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적 우파가 좌파와 함께 그 사회의 인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권은 우파와 좌파가 함께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집단으로써의 자유주의는 아예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권리와 보편적 인권의 추구를 지향하는 우파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간혹 자유주의적 발언을 접하기는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극히 예외적이며 소수의 것일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확보하는 전통적인 과제 외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과제까지도 소위 진보 혹은 좌파에 떠넘겨져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정입니다.
현재의 비관적인 상황으로 볼 때, 긍정적인 의미의 자유주의자들이 대한민국 보수의 중심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형제 존치론자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호칭이 붙는 이 모욕적인 상황을 끝내기 위해,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보편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대한민국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다음은 헌법재판소 합헌결정문의 일부입니다.
③ 사형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형제도의 남용 및 오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법정형에 사형이 규정된 형벌조항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사형이 선택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반인륜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극악범죄의 경우로 한정하고, 나아가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 모든 절차를 세심하게 다듬고 정비하되, 사형제도의 폐지 또는 유지의 문제는 위헌법률심사를 통하여 해결되는 것보다는 내외의 의견수렴과 토론을 거쳐 국민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입법적으로 개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재판관 송두환의 보충의견이 있었다.
이 내용에 기반하여 송두환재판관의 입장이 비록 합헌이지만 사실상 폐지에 가깝다거나 그가 기존의 사형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됩니다. 물론 민변 회장까지 지냈으니 그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그러나 오랜 기간의 사형제도 폐지운동을 통해 얻은 경험에 따르면, 위의 논리는 제가 접한 모든 사형존치론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주장하던 내용입니다.
토론이 끝날 때면, 전 늘 그 사람들에게 방금 말한 내용만이라도 실천에 옮겨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에
약속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위의 내용은, 사형제도를 찬성하되 스스로가 좀 더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사형존치론자들의 전형적인 면죄부에 다름 아니라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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