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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010년 3월 2일), KBS 1라디오의 열린토론에 출연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합헌결정과 관련한 토론이었습니다.
KBS 1라디오 열린토론 2010년 3월 2일 분 소개 게시판

이 글에서는 해당 방송 내에서 소화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시간 관계상, 혹은 이야기의 성격상, 또는 토론의 진행 때문에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주로 한국의 사형제도 현실이 가지는 허구성, 그리고 사형존치 논리의 문제점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부디 이 글이 사형제도 찬반 전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토론이 끝난 후에 함께 출연한 분들께 딴지를 거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분들께서도 역시 다 하지 못하신 말씀이 있으실 것이고, 그저 저는 제 입장에서 못한 이야기들을 모았을 뿐입니다.

응보: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정의의 실현

많은 분들이 주장하고 계시는, 사형제도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범죄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사형제도는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아마 이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형제도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대략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넓은 의미의 살인건수가 약 1,000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사형이 선고되는 것은 불과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건 이내입니다. 바로 이런 자료에 바탕 해서 사형제도 찬성자들은 우리나라의 사형선고가 엄격하게 그리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사형제도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응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이 가족이 죽었는데, 이 중에서 응보의 기회를 얻는 가정은 불과 전체의 100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이니까요. 한 가정이 살인자의 죽음을 기대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동안 다른 100가정은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소위 정의실현의 울타리 밖에서 울고 있어야 하니까요.

결과적으로, 만일 당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살인을 당했을 때, 사형을 통한 응보를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살인범이 경찰에 빨리 잡히지 않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더 많이 죽여서 확실히 사형선고의 대상이 된 다음에 체포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진 사형제도의 현실입니다. 그저 한 명 정도 죽여서는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제도일까요?

범죄자가 한 명을 죽였든, 열 명을 죽였든,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은 로또에 가까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살인자 모두를 사형시키는 것으로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마도 살인자를 모두 사형시키자고 하면 지금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전문가 분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난색을 표할 것입니다. 한 해에 천 명 가까이 사형시키는 것이 별로 가능하지도 않고, 그 와중에서 발생할 오판을 비롯한 각종 문제들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앰네스티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최소한 2,390명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인데, 최소 1,718명을 처형했습니다. (2위는 이란 최소 346명, 3위는 사우디 아라비아 최소 102명, 4위는 미국 37명, 5위는 파키스탄의 36명입니다.) 중국정부도 최근에는 이 숫자에 부담을 느끼고 사형집행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인구가 우리의 27배에 달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 해에 1,000명씩 처형하는 것이 왜 비현실적인 것인지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더군다나, 살인에는 반드시 사형이 집행된다면, 살인범들은 검거가 가까워지면 이판사판의 살인마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고, 억울한 민간인 희생자는 물론이고 범인을 검거하려는 경찰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결국 사형이 살인을 예방하기는 커녕 부추기는 효과까지 가져온다고 봐야 하겠지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현재의 사형제도는 어떤 의미로도 정의로운 응보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극소수의 살인자들만이 시범적으로 뽑혀서 역시 극소수의 피해자 가족들에게만 응보의 감정을 느끼게 해줄 뿐입니다. 사회는 이것을 보면서 살인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된다는 대리만족을 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 순간에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들은 응보조차 불가능한 자신들의 처지에 더욱 소외감과 고통을 느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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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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