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지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형제도는 이미 찬성론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제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형제도 찬성의 강력한 근거인 예방효과가 사실은 근거 빈약한 가설일 뿐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더하여,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사형제도는 사실상 누더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형폐지론자들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형에 우호적인 현정부에 의해 그렇습니다.
2009년 9월 1일 언론보도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유럽평의회에 형사사법 관련 협약 가입을 요청하면서 ‘가입하게 되면 사형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유럽평의회 쪽이 밝혔다. 법무부도 앞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한겨레신문)
이 부분은 아직 진행중인 사안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미 결론이 난 사안도 있습니다. 얼마 전인 3월2008년 10월 1일,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불가리아를 방문하여 체결한 한-불가리아 범죄인인도조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합의했습니다.
"두 나라는 범죄인인도조약에서 인도 대상 범죄를 최소 1년 이상의 자유형이나 그 이상의 중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에 한정하고, 청구국 법률이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 사형을 부과 또는 집행하지 않는다는 보증 하에 인도가 가능하도록 했다." (CBS)
이 조약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체포되기 전에 비행기를 타고 불가리아까지만 가면, 사형집행은 무조건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사형제도는 불가리아까지 갈 능력이 안 되는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EU의 관련 협약 가입이 성사되면 그 대상은 물론 전체 EU국가로 확장되게 됩니다.
결국 사형제도 찬성론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삼일절 날에 대한민국 정부는 스스로 사형제도와 관련한 주권을 일부 포기하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사형제도를 만신창이의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에 대해 사형찬성 쪽에서 좀 들고 일어나야 마땅할 것도 같은데, 그런 소식은 없더군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사형제도라는 것이 대단히 희한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특정국가로 도망가지 못한 어정쩡한 범죄인들만이 사형당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따라서 미리 충분한 계획을 하고 시작한다면 -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 유형이죠 -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사형이 면제될 뿐 아니라, 이런 상황을 앞으로 뒤집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디에 정의가 있고, 응보가 있고, 예방효과가 있겠습니까.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면적으로 사형제도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사형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공평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맺음말
몇 가지 논지에서 사형제에 찬성하는 분들의 감정에는 저 역시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형제 찬성론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형제도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공평한 응보가 되고, 더 많은 살인을 예방해서 억울한 희생자를 줄여주는 그런 사형제도는 대한민국에도 없고, 전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의 사형제도는, 끝 부분에 살펴본 것처럼 사실상 정부에 의해 누더기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사형제도는 찬성론자들이 머리에 그리는 그런 사형제도가 전혀 아니고, 찬성과 반대쪽 어느 입장에서 보아도 괴이하고 처량한 모습일 뿐입니다.
전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매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맹세하며 커 온 세대입니다. 모든 교육과 사회분위기가 그러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조국과 민족의 영광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에 대해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조국과 민족에 누가 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국가-개인의 관계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최소한 머리로 만이라도 알고 있습니다. 사형제도는, 제가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단순히 소수의 흉악범과 다수의 시민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과 개인의 관계, 특히 국가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다투는 문제입니다.
세계의 추세를 자꾸 들이대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물론 사형제도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한계 자체가 도전 받는 상황은 결코 우리나라만으로 제한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가 완전한 사형폐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만 안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사람은 맞아야 말을 들어'와 비슷한 의미로 들립니다.
한국엠네스티의 비공식 블로그인 Amnesty Diary에 국제 집행위원회 고은태 위원의 글이 올라왔길래 링크 걸어봅니다. 얼마전 헌재 판결 이후에 있었던 KBS라디오 열린 토론회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씀을 글로 쓰신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사형제 폐지가 옳다라는 방향이 아니라, "사형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사형제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지로 글을 끌어가고 계십니다. 지난번 제가 사형제 반대 입장을 올리고 나서 정말 많은 분이 오셔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말 부터 계속 비가 촉촉히 내리는 3월 2주 첫 날입니다.
새로 이사한 저희 사무국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직은 회색빛이지만,
곧 진정 봄날 다운 예쁜 햇살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자는 봄을,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있죠?
아마도 봄의 산뜻한 설레임이 여성들의 감성과 닮아있어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이번주에는 더 봄 다운 날씨를 기대하며,
자,그럼 3월 둘째 주 한 주동안 블로고스피어내에서는
어떠한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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