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일, KBS 1라디오의 열린토론 진행 중에 벌어진 에피소드 한 토막입니다.
다행히 출연하신 분들이 모두 합리적인 분들이라서 좋은 분위기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자가 청취자들의 문자를 받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 패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일 본인의 가족이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하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습니다.
이런 것은 사실 공개적인 방송토론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질문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좀 굳어졌고, 사형제에 찬성하시는 패널조차도 문제 있는 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사회자는 미안한 듯, 동일한 의견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형제도가 이슈가 되기만 하면 인터넷에는 저런 댓글이 도배되고, 그 보다 훨씬 더한 증오와 저주, 욕설도 많이 보이니까요.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그 질문은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일단 저런 식의 질문은 더 이상의 토론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정부를 비판해 보았자, "너 하루라도 대통령 해봤어?"하면 그걸로 토론은 끝입니다. 이야기하기 싫다는 뜻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합리적인 토론을 원한다면, 나와서는 안 되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하시는 분들 중에 사형 당해보신 분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대한민국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매우 고독하고 어려운 결단의 결과물입니다. 일단 사회분위기가 그렇고, 처음부터 쉽게 사형제도에 반대하면서 자라난 사람도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런 가운데서 사형에 반대하게 되었다면, 꽤 많은 실존적 고민을 거쳤음을 의미합니다. 그 결론이 옳든 그르든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런 질문 한 번 안 던져보고 사형제에 반대하게 되었을까요?
그렇지만 이 질문이 다른 사람을 향해 제기되었을 때, 이것은 대단히 무의미한 질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답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 답을 듣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종교인들에게 "네가 끔찍한 고문과 죽음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과 같죠. 특수한 심리상태가 아닌 한, 올바른 답은 "그때 가봐야 알겠다"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질문은 그 자체로 매우 무례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극도로 불쾌한 상황 속에 밀어 넣는다는 데서 그렇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여 상대의 양심을 시험하려 한다는 데서도 그렇습니다. 결국 이런 질문은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공격해서 상처를 주고 보복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이성에 입각한 토론이 아닌, 감정에 기반한 말싸움의 자리라고 해도 저런 질문은 함부로 던져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실제로 자신의 아주 가까운 가족이 살인 피해자가 된 사람들만이 저 질문을 던질 최소한의 자격을 가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런 질문이 가능하다면, 정확히 그 반대의 질문도 가능합니다. "네 부모가 살인범이라도 넌 네 부모의 사형에 찬성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당연히 살인 피해자의 수보다 결코 적지 않은 살인범이 존재하므로 앞의 질문이 타당하다면 꼭 그만큼의 가능성으로 이 질문도 타당합니다.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부모라도 흉악범은 죽어 마땅하다고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질문은 앞의 질문 만큼이나 잘못된 질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수많은 사형관련 토론의 장에서 저는 한번도 사형폐지론자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못 봤다고 해서 아주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형찬성론자들이 흔히 던지는 저 질문의 숫자에 비해서는 극히 적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따지고 보면, 저는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사형선고를 하지 않거나 헌재에 위헌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법관도 아니고, 사형집행을 마냥 미루고 있는 법무부장관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시민일 뿐입니다.
단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증오와 저주, 그리고 심지어는 인신공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물론 진심을 담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형찬성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사형제에 반대하는 분들이 그런 거친 언사를 쓰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냥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과연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살인범들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이었을까요, 반대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어느 쪽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더 높을까요? 물론 저는 답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사형관련 게시판의 댓글들을 훑어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형제도야 폐지되거나 말거나,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혹시 우리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 그날 우연히 택시 안에서 라디오 들었는데 너무 금방 내려서 내용은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정말, 사형제에 대해서는 정작 사형수와 집행자들보다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조아신이 한때 사형제를 다룬 영화 한 편에 무지 열광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네, 사실 사형제도 자체도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사형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형제에 대한 논의가 이런 점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감사감사.
영화 찾으면 알려주세요.
그나저나 재미있는 것 또 하나는, 블로그 포스팅을 검색해보면 대체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의 주장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반면 댓글에서는 압도적으로 사형찬성자들이 강세죠. 결국 사형문제에 관한 한, 블로그 포스팅하는 계층과 댓글다는 계층 사이의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 그날 우연히 택시 안에서 라디오 들었는데 너무 금방 내려서 내용은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2010/03/10 09:43정말, 사형제에 대해서는 정작 사형수와 집행자들보다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조아신이 한때 사형제를 다룬 영화 한 편에 무지 열광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네, 사실 사형제도 자체도 중요한 이슈이기는 하지만, 사형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형제에 대한 논의가 이런 점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감사감사.
2010/03/10 10:08영화 찾으면 알려주세요.
신비는 제게 메일 한통 없더니 여기서 댓글 달고...미워 할꺼야 증말.....
2010/03/10 10:44신비님 여기 댓글 다시게 하기 위해 제가 신비님 트윗에 두번이나 답을 했어야 했다는..ㅋㅋ
2010/03/10 12:50규환님도 노력해 보세요.
그나저나 재미있는 것 또 하나는, 블로그 포스팅을 검색해보면 대체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의 주장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반면 댓글에서는 압도적으로 사형찬성자들이 강세죠. 결국 사형문제에 관한 한, 블로그 포스팅하는 계층과 댓글다는 계층 사이의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2010/03/10 15:36소위 블로거의 대부분은 좌파님들이 차지하고 있지요.
2010/03/10 22:50사실 좌파가 싫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약한 아이들이나 여성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자들의
인권만을 챙기고
사회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죠.
강호순 같은 변태 살인범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형이
좌파정권이 집권하고나서
중단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파가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한다면
이런 잘못된 이상주의럴 버리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맨 댓글에 달리는 빨갱이 좌파우파논쟁
2010/03/11 01:59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좌파고 어디까지가 우파인지 명확히 정의 하실수있습니까?
좌파우파논쟁은 내 뜻에 동의안하는 사람들은 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전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2010/03/11 02:02원칙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지만 사고사를 제외한 다른 살인은 사형만이 유일한 처벌입니다
계획범죄, 이유없는 살인, 연쇄살인등은 용서 할 수 없는 범죄입니다
뒤집을수 없을만한 다수의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벌을 내려야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합당한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바로서야 합니다
인권이 중요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권이 서로 충돌할때는 피해자의 인권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항입니다
피해자의 지인들이 죄지은 자를 처벌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
역시 피해자들의 정당한 인권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요구를 무시할만 어떠한 권리를 가진 가해자가 존재할까여...
다만 사람이 하는일이라 가해자가 아닌 잘못된 사람이 가해자로 처벌을 받는것을 막기 위해서
꼭 죄를 입증하는 명백하고 확실한 다수의 증거를 가졌을때만 사형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사형제를 할만한 범죄를 짖는 사람들이 없어서 존재하고 없어져서는 안되지만
시행되지 않는 제도가 되길 바랍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사형폐지론자들이 가해자의 인권을 '우선시'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존치론자들의 선전문구일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우선시'한다는 것 자체가 사형폐지론과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요.
2010/03/11 14:17관련하여 제가 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보시면,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http://www.amnestydiary.net/345
http://www.amnestydiary.net/346
http://www.amnestydiary.net/347
공감하고 갑니다. 링크해주신 글들까지 잘 읽었습니다.
2010/03/26 15:12감사합니다.
2010/03/26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