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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내용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저 같은 보통사람이야 그 내막을 잘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짐작할 뿐이지요. 그러다가 사소하지만 점검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2월 25일 헌재의 사형제도 합헌결정 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보통 기자회견이라고 하면 질의응답도 있는데다가 제가 원고를 그대로 읽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사실 나중에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직 원고를 성실하게 읽었을 뿐이기 때문에 기사화된 내용과 확실한 비교가 가능했습니다.

일단 문제의 원고는 제가 다른 글로 포스팅 했으니 함께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형제 합헌 결정에 대한 헌재 앞 기자회견 발언문

그날 밤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기사 몇 개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굵은 글씨는 제가 강조한 것입니다.

고은태 국제앰네스티 국제집행위원도 “헌재 결정은 사형제 없는 세상으로 나가는 국제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1977년 16개던 사형제 폐지국은 2010년 현재 139개국에 이른다. 국격을 말하는 한국이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주장했다.

앞의 두 문장은 분명히 제가 한 말이지만, 결론으로 제시된 부분은 제가 전혀 하지 않은 말입니다. 사실 저는 국격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동의하지만 그 표현에는 조금 거부감도 들고 의미도 혼란스럽게 쓰이는 점이 있어서 잘 쓰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시점에서 사용하면 비꼬는 것 같기도 하지 않습니까? 요즘엔 그런 화법을 잘 쓰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이지요.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고은태 이사장은 “1990년 이래로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알바니아, 우크라이나 등의 헌재는 사형제 폐기를 결정했고 러시아 헌재도 자국 내 사형선고와 집행 유예를 연장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한국의 이 같은 결정은 깊은 실망감을 안겨줬다”며 “국제적 흐름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 부분은 완전한 사실이지만, 다만 제가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뒷부분 조금만 빼고는 인용된 발언의 대부분이 제 발언이 아닌 것이지요. 아 참, 저는 더 이상 한국지부 이사장이 아닌데, 이건 뭐 제대로 알리지 못한 제 책임도 있으니까 통과합시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전해졌다. 고은태 국제 앰네스티 국제집행위원은 "국제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헌재의 합헌 결정에 국제사회는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며 "UN사무처장을 배출한 한국이 아시아의 인권을 선도하는 국가로 나설 수 있도록 사형제 폐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 문장은, 제가 한 발언의 흐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뒷문장은 역시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UN사무처장은 사무총장의 단순한 오타이겠지요? 사실 과거에는 UN사무총장 운운하는 표현을 조금 쓰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쓰지 않고 있습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인권분야에 있어서는 전임 총장에 비해 전혀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는 분을 가지고 인권 이야기 해 보았자 별로 설득력도 없고, 이 문제를 가지고 정부의 발목을 잡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의 세 기사만 볼 때, 제 이름이 나오고 따옴표로 인용된 부분 중 실제 제가 한 이야기는 반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미리 밝혀두지만,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해당 언론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을 하고 있거나 불만을 표현하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위의 기사내용들은 그날 제 입에서 나오지 않았고, 제가 이야기하는 스타일과 다르다 뿐이지 진실을 왜곡한 것은 없고, 또 어딘가 다른 자리에서라면 제 입에서 나왔다고 해서 크게 놀랄만한 내용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취지에서 해당기사의 출처를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불만을 제기하기 보다는, 당시 기자회견에 모인 사람들의 취지를 하나라도 더 전달하기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기사화 된 것은 아마도 제 발언을 짧게 인용하면서 완결된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 혹은 제 발언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해주고자 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나름대로 일이 이렇게 된 과정을 헤아려보면, 현장에서 발언하신 저 외의 다른 분들의 발언도 있었고, 저의 현장 발언 외에도 별도로 국제앰네스티의 보도자료가 같은 날 배포되었는데, 이들을 모두 일일이 출처를 밝혀 인용하는 것이 어렵고, 내용전달에도 좋지 않으므로 몇 개가 합쳐져서 제 입을 통해 나간 것으로 기사가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합니다.

제 쪽에서야 이런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 불만은 전혀 없지만, 이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언론에서 누군가의 실명이 밝혀지고 그의 발언이 따옴표 속에 인용된다면, 당연히 그 따옴표 내의 내용은 실제 그 사람이 말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불행히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과 판단은 대부분 세상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 중 시사성이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언론을 통해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론을 통해 얻은 지식 중 어떤 것들은 일정 부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실보도 조차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언론을 믿을 수 없다고 늘 이야기 하다가도 보고 읽는 순간에는 믿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니, 세상을 사는 지혜 중의 하나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해보고,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는 더 깊고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양심적인 지식인-전문가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누가 무슨 말을 했다고 열 받기 전에 그 발언이 자기 귀로 들은 것이 아닌 이상 한번 더 점검해 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직접 귀로 들었을 때 조차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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