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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

회원 일기 2010/03/18 13:33 posted by 경성트로이카

요즘 잠도 안오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공부도 잘안되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두가지 원인때문에 자꾸 생각에 생각들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불면이 오고 있습니다.

내일 insomnia에 대해 발표 해야 하는데 아주 잘된일이죠.

그래서 일기처럼 쓴 글 공유합니다.

이게 인권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라고 물으시면 뭐 딱히 드릴 답변은 없습니다만...

그냥 저 이렇게 살고 있다 뭐 그런거죠?

궁금하지 않다 이러시면 그 역시 딱히 드릴 답변은 없습니다. 그럼 바로 쳅터 2로 가서 박노자 선생의 글이라도 읽어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무슨 의미 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에서 10년이나 일했으면서

대학을 거부한 그 학생의 글을 읽고 잠을 잘 수 가 없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함께 하고 싶기도 하고...

또 아래 나오는 조태욱님의 기사도 한번 읽어 보세요.(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42968)

사형제도 문제고 국가보안법도 문제고 인권침해도 문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건 모르건 오늘도 한국에서 부터 저 멀리 이름 모를 나라에서도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쳅터 1. 나는 싸우고 있는가?

오늘 문득 김남주가 생각났다. 그리고 찾은 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인간적인 행위는 자본의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것이다...

가서 지배계급의 허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그들이 저질러놓은 범죄를 파헤쳐

청천백일하에 드러내고 변혁운동의 이념과 사상을 대중들 사이에 전파해야 한다..

 삶...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비인간성, 부패와 타락에 대한 전면전에...

몸소 자신이 참가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의 형태와 관계없이 누구나 전사인 것이다."

 

KT에서 일하는 조태욱 선배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봤다. 어떻게 저렇게 순하게 생겼을까

싶었던 사람이 바로 조태욱 선배다. 그런 그가 부당전보발령으로 인천에서 사천으로 발령을

받아 지난 겨우내내 사천KT사옥 앞에서 농성을 했다고 했다. 물론 그의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노동대학 동문들에게 그의 부당전보발령 소식을 메일로 보내고

잊고 있었다....그가 겨우 내내 그 작은 텐트에서 보냈다고 한다.

 난 싸우고 있는가? 이곳에 와서 사실 싸울 대상도 없어진 느낌이다.

자신과의 싸움...

 노동대학이 올해 10주년이다. 기획안만 마련해 두고 그냥 온건에 내내 걸린다.

축하공연을 하겠다던 미누는 강제 추방 되었고...KT노동조합은 이제 더는 민주노총 산하

조직이 아니다. 영어라도 잘했으면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가서 축하 인사라도

동영상으로 받고 싶은데...

 무심히 사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우울해 하는 룸메이트도 걱정이고...영감같다고 면도 하라던 아들 녀석도 보고 싶고....처형도 걱정이고...

우리 엄니도 걱정이고....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라고 기다려달라던 MB도 걱정이고...

은태형도 걱정이고....희진씨도 걱정이고....4월에 있을 총회도 걱정이고...

우리학교도 걱정이고...대학을 거부한 그 여학생도 걱정이고...

죽여버려야 한다고 아웅성치는 얼굴없는 주장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제일 걱정인건 내일 학교 가는 일이다...

나도 사람인가 보다....

쳅터 2. 선언.

지난주에 한 여학생의 선언을 보았습니다.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던 이 친구가 대학을 자퇴하며 쓴 대자보를 보았습니다. 자퇴라기 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죽은 대학은 거부 하는 대학거부 선언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또 대학의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갈망하는 사람으로 부끄럽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전 죽은 대학 죽어가는 대학에서 도망을 왔는데 이 친구는 좀 더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당당히 커밍아웃을 해 버렸습니다.

 

한 젊은이의 선언에 어느 누구하나 거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술렁임이 있었지만 이런바 지식인 집단이나 그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거부선언에 지지나 반대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만 죽은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래 글은 박노자 선생의 글입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공유하고픈 마음에 퍼왔습니다. 출처는 그의 블로그입니다.

 이곳 캐나다의 대학 풍경도 제겐 참 많이 부러웠습니다. 즐겁게 또 열심히 공부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다시 대학 다닐 기회가 있으면 절대 한국에서 다니지 않으리라...그리고 내 자식도 절대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시키지 않으리라 생각해고 있습니다. 뭐가 어디서 부터 잘 못된건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에서 10년간 일하면서 이것 저것 참많이 해 봤고 바꿔보자고도 해봤는데 별로 달라진게 없어서 자괴감이 드는 몇일이었는데....다시 박노자 선생의 글을 보면서 기운을 내봅니다. (그와 저는동갑내기입니다. 그리고 제 업무 중에 하나인 노동대학이란 프로그램 때문에 간혹 메일을 드리면 늘 성실히 답변을 해 주시는 참 멋진 교수죠.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 중에 또 제가 만나본 인물 중에 랭킹 1위는 홍세화 선생이고 2위가 바로 이 박노자 선생입니다. 한국에 있으면 친구먹자고 했을텐데....저 아래 나오는 오태양이란 인물도 제가 잘 아는 인물인데....그러고 보니 제 주변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저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대학 거부자에게 지지를 보내며> 박노자.

 지난 주에 <경향신문>에선가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 학생의 "자퇴선언"에 대해서 읽었을 때에 거의 눈물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죽은 이들의 유령만이 돌아다니는 황천에서 우연히 산 자를 봤을 때의, 그런 류의 기쁨이었습니다. 고대 등 서울의 "명문대"들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그 지성의 폐허에서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어찌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8년 전인가 9년 전인가, 제가 오태양씨가 여호와증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거의 최초로 병역거부를 선언했을 때에 바로 이와 같은 기쁨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병역거부"와 "대학거부"는 많은 면에서 -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 동질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기관이 갖고 있는 기능, 그리고 이 두 기관의 각종의 문화적 특징이 상호 흡사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군대란 상사 명령이라면 잔업이든 특근이든 회식이든 경제범죄든 무엇이라도 대꾸없이 다 할 수 있는 유순한 심신, 즉 한국형 자본주의에 필요한 인간기계를 대량생산하는 학교 다음의 남성 전용 사회화기관이고, 대학이란 이미 학교, 군대에 의해서 심신이 유순해지고 충분히 "길들여진" 인간기계들 중에서 고가로 판매될 수 있는 고급 기계들을 추가적으로 생산해내는 "공장"입니다. "길들여진", 즉 영혼이 영원히 거세된 인간들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대학도 - 물론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 개인에 대한 상당한 압박 구조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이 군림하는, 그러한 공간이 아니라면 유순한 인간기계가 어찌 생산되겠습니까?

 

사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한국에서 근대식 전문학교 및 대학이 생긴 이후로는 늘 "중급 사회" 내지 "고급 사회"로의 관문의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즉, 무한한 거래의 장소인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잘 팔릴" 인간들을 애당초부터 생산해온 것이죠. 구한말에는 외국어학교 중에서도 유독 일어학교가 대접을 잘 받고 법관양성소 (오늘날 서울대 법대의 전신으로 봐도 큰 무리 없음)에 유독 인재들이 많이 몰렸던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하지 않았습니까? 잘되면 통감부에서의 통역, 아니면 지방 법원의 법관부터 시작해 출세의 가도에 오르고, 못돼도 변호사나 교사 정도 해먹을 수 있게끔 하는 건 그 당시로서 "대학"으로 칠 수 있는 교육기관의 역할이었습니다. 물론 법관양성소에 다녔던 사람 중에서도 "조선의 장병린"이라고 할 변영만 선생이 있었다는 점, 즉 초기 근대의 "출세" 체제에 개인적으로 반기를 든 위인들이 전혀 없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지만, "상등 사회"로의 관문에서 친구를 짓밟아 들어가려는 풍경은 그 때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았지요.

 

다른 점이 있었다면 "사회 분위기"가 오늘날과 질적으로 달랐지요. 굶주린 농민 위에 군림하는 일제라는 "남의 국가"하에서 출세한다는 것부터 자생적 국가전통이 수천년이나 되는 나라에서 좀 꺼림직한데다가, 아직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는 식의 유교적 이상주의를 어릴 때부터 익힌 사람들은 배운 층의 다수이었어요. 그러니까 이태준 선생처럼 일본 상지대를 중간에 그만두고 출세고 뭐고 다 팽개치고 작품들을 통해서 "조선"과 "인간"을 본격적으로 탐구해보려는 사람들이 그 때에 많았던 것입니다. 그 시대의 "대학거부자" 명단을 보면 꼭 "위인전" 목차를 읽는 기분이지요. 염상섭 (경응대 중퇴), 현진건 (상대 호강대학 중퇴), 이찬 (와세다대 노문과 중퇴), 강경애 (평양 숭의여학교 동맹파업건으로 강제 퇴학)... 그러니까 김예슬씨가 일제시절의 <대학거부자>들의 명단을 한 번 보면 용기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시대의 황혼이었던 그 때만 해도, "졸업장"보다 "문장"이나 "박식"이 더 잘 통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양심이 가장 강한 조선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유교적 이상주의는 바로 혁명적인 정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과학적으로, "사회주의"라는 근대개념어로 정의된 대동세상을 얻기 위해서 물 한 표주박, 밥 한 먹음의 지사적 삶을 택한 이들은, 대학을 나왔다 해도 "출세"에 아주 무관심했습니다. 김철수 (1893-1986)선생처럼 와세다대 정치과에 다니면서 김성수 등 유산 계급의 젊은 거두들과 말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에 있었던 사람은, 마음만 먹었으면 무슨 출세 못했겠어요? 그래도 와세다를 다 팽개치고 결국 감옥들을 전전하는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것이지요. 지금의 서울 "명문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벌써 다른 나라, 아니 다른 행성의 이야기만 같지요?

 

해방 이후에 적어도 80년대말-90년초까지 이와 같은, 이상주의가 강하게 섞인 캠퍼스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된 데에 또 여러 가지 역사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의 "비정상적인 국가"가 근대적 이성을 교과서적으로 배운 젊은 지식인들의 정의감을 크게 자극한데다, 식민지 말기와 해방 전후 시대를 거쳐온 윗세대 지식인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큰 학생들에게 "사회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은 일차적이었습니다. 강만길 선생의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조동걸 선생의 <일제하 농민운동사>와 같은 책을 읽고 자란 세대에게는 비록 나 한 몸이 고대를 나와 상섬이나 현대의 잘 나가나느 머슴이 될 수 있다 해도 옆에서 가난뱅이들이 빈곤과 압제 무게 밑에 짓눌린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사고방식을 갖기가 쉬웠습니다. 근대 초기의 - 아직도 대단히 유교적인 - 희생적 지사 정도 아니더라도, 근대 "중기" (해방 이후 1990년대초까지)의 지성인은 여전히 사회적이고 연대적이었습니다. 거기에다 현실적으로 - 이윤율이 아직 높고 국가 기구와 시장이 아직 확장돼가는 사회에서는 - 마음만 먹으면 출판사에서 번역하든 학원강사하든 "운동"에 매진하는 몸을 먹인다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식민지하의 "지사들의 시대"를 방불케 하는 1980년대를 한국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저야 그 때를 보지 못했지만, 1991년에 본 고대만 해도, 아직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같이 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사람부터 도스토예브스키에 매달려 공부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까지 말에요.

 

그런데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 때에 군바리 깡패 집합이었던 국가가 이제 좀 "얌전한" 모습을 -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 취하면서 천하제후의 회의라고 할 G20 회동을 주도하겠다는 기염을 아주 극제적으로 토하고, 국내의 계급 분화가 고도화돼 계급간의 구분선이 아예 세습화돼가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에 근대 "후기" (1990년대초부터)에 접어들어 "사회적" 개인이 점차 그 자취를 감추고 대학가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각종 "인간 상품"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시장"과 "거래" 이외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보는 세상이란, 개인이 그 노동력을 고가로 팔고 그 여가 시간에 해외여행부터 똑같이 소외된 개인들과의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까운 "친구 관계"까지, 각종의 거래들을 누리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공부도 (당연히!) 거래, 대인관계도 (당연히!)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고 아픈 구석을 만져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상호 거래, 직장/직업도 거래, 종교도 (하나님에게 천당 입장료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래, 사랑도 (듀오에서 서로의 레벨을 맞추어주는) 거래...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어도 되는" 도야 이미 원시시대 토템 이야기나 된 것이고, "사회"도 그들에게 아주 무의미한 말입니다. 서로에게 서비스를 사고 팔고 세금을 내는 경제 주체들의 집합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이들의 세계에서는 "꿈"이라는 타워팰리스에서 집 한 채 사고픈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진실 탐구"는 재테크 익히기의 딴 이름입니다.

 

이 "죽은 영혼" 사이를 산 사람이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근대 "후기"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서로 연대를 해, 대학에서 "인간"과 "사회"를 다 같이 복원해보는 것은 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자신만을 위해서는 아니고 나와 남, 모두를 위해서 하는 등록금 인하 투쟁부터 시작해서 무상 교육을 위한 투쟁, 대학의 민주화 (학생들의 대학운영 참여)를 위한 투쟁, 고등교육의 공공화를 위한 투쟁... 이 연대적 과정에서 우리가 포스트모던의 지옥적인 원자화를 좀 극복할 수 없을까 해서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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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음... 뭔가 독후감을 써야할 듯 한 압박감이군요.

    1.
    싸우기 보다는 행복해지고 싶어요. 물론 행복해지기 위해 싸워야 하겠지만...
    우리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 봅시다.
    근데 제가 요새 백수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누구 좀 먹여살려줄 사람 없을가 모르겠네요.
    혹 거기서 그런 사람 만나면 저 좀 추천해 주세요.
    상당히 사회에 기여하며 살 듯.

    2.
    지나온 일에 대한 회한은 마음을 망칠 뿐이고...
    지금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봅시다.

    3.
    원죄의식의 사라짐에 대해 박노자선생이 잘 설명하셨군요.
    많은 부분에서 이런 변화가 오늘의 잔혹한 한국사회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원래 이렇지는 않았거든요.
    흠, 그럼 우리 세대가 한국을 망쳐먹었나요?

    4.
    박노자 선생.. 사귀고 싶은 인물 랭킹 1위입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제 글을 읽다말고...
    '당신 글투가 자꾸 박노자 닮아가!'하던데...
    사실 저도 쓰면서 느끼고 있었다능...
    하여간 소개 좀 해주세요.

    2010/03/18 15:34
    • 꼬 규환  수정/삭제

      지부장님 댓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진짜 행복해 지고 싶은데....방법을 잊은 것 같아요...늘 날선 무언 가만 나오고.....그냥 모질지 못해서 그런가봐요. 한국에서도 큰 일만 있으면 늘 마음은 그곳에 가있죠. 일도 손에 잘 안잡히고...걱정되고...뭐 도움도 안되는 인간이 말이죠...박노자 선생께는 메일 한번 보내 보세요. 블로그 소개도 하시고 친해지고 싶다고....전 그런거 죽어도 못해요 ㅋㅋ메일 주소는 제가 갖고 있을텐데 필요하면 언제 든지 연락 주세요(이것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거죠? 그럼 그냥 박노자 선생 블로그에 글 남기세요 ㅋㅋ)

      2010/03/19 09:45
  2. 링컨(리베스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

    2010/03/19 03:41
    • 꼬 규환  수정/삭제

      박노자 선생이 글을 참 잘쓰시죠...제가 참 좋아라 하는 분입니다.

      2010/03/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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