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부장일기라기 보다는 개인일기에 가깝네요. 현재 앰네스티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저는 거리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집회상황을 조사하거나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올라가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동시에 전체적인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글이 굉장히 기니까, 각오하고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네요.
8월 15일,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체험학습에 갔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행사가 있는 것 같아서 가급적 일찍 도착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종각역에 내려서 주변을 돌아다녀보아도 역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슬슬 걸어 인사동까지 간 후 점심을 함께 먹었지요. 인사동에서 둘이 하는 식사는 참 오랫만이었습니다.
식사 후에 인사동을 훑으며 플래쉬몹을 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고 - 시간을 잘못 알았더군요 - 종로2가에 오니 살수차가 서있었습니다. 깔끔한 것이, 신상인가 봅니다. 혹시나 해서 탑골공원으로 가니 작은 집회가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하려고 하고 있더군요. 비가 조금씩 오는 분위기라서 어정쩡하게도 탑골공원 정문 지붕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이건 뭐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분위기... 앞에 서계신 할아버지들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집회 같았는데, 자꾸 사람들이 모여들더군요. 경찰차가 완전히 봉쇄하고 있어서 밖에서는 집회 중인지 알지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엄혹한 독재체제라 해도 골방에서 혼자 표현할 자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 머릿 속으로만 무슨 생각을 할 자유를 사상의 자유라고 부를 수 없듯이 - 이건 북한 주민들도 할 수 있으니까요 - 이렇게 갇힌 집회도 집회의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 것은 자기들끼리 결의를 다지자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전경버스와 같은 것으로 완전히 막아놓는다면, 이것을 보고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법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인권에 대해, 헌법적 권리의 본질에 대해 최소한의 공유점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글이 깁니다. 계속 읽으실 분들은 more를 눌러 주세요.
8월 15일,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체험학습에 갔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행사가 있는 것 같아서 가급적 일찍 도착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종각역에 내려서 주변을 돌아다녀보아도 역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슬슬 걸어 인사동까지 간 후 점심을 함께 먹었지요. 인사동에서 둘이 하는 식사는 참 오랫만이었습니다.
식사 후에 인사동을 훑으며 플래쉬몹을 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고 - 시간을 잘못 알았더군요 - 종로2가에 오니 살수차가 서있었습니다. 깔끔한 것이, 신상인가 봅니다. 혹시나 해서 탑골공원으로 가니 작은 집회가 탑골공원 앞에서 시작하려고 하고 있더군요. 비가 조금씩 오는 분위기라서 어정쩡하게도 탑골공원 정문 지붕 밑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이건 뭐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분위기... 앞에 서계신 할아버지들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집회 같았는데, 자꾸 사람들이 모여들더군요. 경찰차가 완전히 봉쇄하고 있어서 밖에서는 집회 중인지 알지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엄혹한 독재체제라 해도 골방에서 혼자 표현할 자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 머릿 속으로만 무슨 생각을 할 자유를 사상의 자유라고 부를 수 없듯이 - 이건 북한 주민들도 할 수 있으니까요 - 이렇게 갇힌 집회도 집회의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 것은 자기들끼리 결의를 다지자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전경버스와 같은 것으로 완전히 막아놓는다면, 이것을 보고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법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인권에 대해, 헌법적 권리의 본질에 대해 최소한의 공유점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요?
글이 깁니다. 계속 읽으실 분들은 more를 눌러 주세요.
more..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면서 집회에서 나오는 발언과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도, 저희가 앉은 후미진 자리 바로 옆에 쌓여있는 떡에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82cook.com에서 준비하신 떡인 것 같았습니다. 몇 분이 떡을 지키면서 자료를 나눠주고 계셨는데, 왜 그 떡이 하필이면 그렇게 맛있을 것 같던지...
집회 이후에도 아내에게 '저 떡 언제 나눠줄까'라는 등의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핀잔을 제대로 듣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떡은 이 날 밤에 비극적인 결말과 연결되고 맙니다.
한 손에 바로 이 떡을 꼭 쥔 채 연행되고만 우리 앰네스티의 이모씨. 떡에 집착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저 떡이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던 듯 합니다. 어쨌거나 저는 결국 저 떡의 맛을 못보고 말았습니다. (떡열사의 연행이야기는 글이 너무 길어서 다음 글에서 다룹니다. 떡열사라고 했다고 화내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러고 보면 좀 떡하고 닮은듯...)
집회 중에 평화행동단 몇 분이 저희 앞을 지나치셨습니다. 그 중에 한 어여쁜 처자분의 얼굴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야 뭐 사람 기억못하기로는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므로 생각이 날리가 없죠.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혹시 또랑님 재판에서 본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지나가는데 붙잡고 여쭤보니 역시나 그랬습니다. 몇 시간을 얼굴 보고 있었으면서도 몰라본 저도 굉장하고, 그걸 맞추는 아내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분, 연행되셨을까요? 무척 걱정이 됩니다.
집회가 끝나고 보니 상당히 많은 분들이 계시더군요. 우리 지역에서 올라오신 분들도 깃발을 들고 계시고, 압권은 역시 흑사단. 간지 만땅 사진이 있지만, 얼굴이 너무 잘나와서 올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평화행동단이 역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아 참, 집회 시작때 쯤 한복 치마저고리로 들어오시던 분들도 기억나네요.
집회 후 일부 깃발이 거리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물어보니 대학로에 합류하러 간다는군요. 저희에게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왜 지하철 타고 간다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촛불다방에서 맛있는 냉커피도 얻어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전에 앰네스티에서 일하셨던 박모씨를 만났습니다. (이 박모씨, 나중에 벌금이나 손해배상이라도 크게 맞으면 개인적으로 모금이라도 해야 하겠습니다. 흑흑)
이제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어보니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헐.... 조금 기다려보다가 지겨워져서 이번엔 좀 범위를 넓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만의 부부동반 서울나들이니까요. 멀리 갔다가는 또 사람들을 잃어버릴까봐 창문이 있는 주변 커피집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커피집 창 밖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_-;;
그 비싼 커피집에 거의 예외없이 쌍쌍이 앉아 여름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 친구들, 저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싼 집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으면, 세상에 불만을 가질 이유도 자격도 없을 것 같다는 이상한 결론이 났습니다. 88만원 세대도, 구직난도 딴 세상 이야기 같더군요. 세상이 저렇게 행복한데 뭐하러 복잡한 세상사를 따져볼까요? <-- 비뚤어진 생각이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학로로 떠난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은 부지 하세월일 것이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주변을 돌면서 자기 주장을 알리기라도 하지... 하는 좀 철모르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4시 반에 YTN 앞에서 뭐가 있다는 이야기에 의지해서 그 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거기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가는데까지 가보는 거죠. 거리 상황도 살필 겸... 어쨋든 둘이 함께 있으니 이동하는 과정도 나름 즐겁더군요. 혼자일 때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광화문 거리가 참 한산하더군요. 경찰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버스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평화로운 거리풍경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올림픽경기를 보면서 응원하고 있더군요. 전의경들도, 지휘관들도 느긋한 모습으로 중계를 보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시청 앞에서 봉쇄중인 경찰을 보면서 어느 사회나 참 불공평하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 참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런거나 보면서 헬렐레 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기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어릴때 교회 부흥회에서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열광하시던 할머니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착잡함, 곤혼스러움입니다. 결국 세상은 불편하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일률적으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네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분들이 건 플래카드도 있더군요. 촛불집회 하는 시민들이 건 플래카드도 이렇게 놔둬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권력의 정당성은 합법성 외에도 공평성이 담보될 때만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합법성은 정당성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준비되고 있는 건지 끝난건지 알 수 없는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서 시청역 4번 출구까지 왔을 때, 우리의 나름대로 즐겁던 서울나들이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지하도를 적극 혐오하는 아내와, 역시 계단에는 취미가 없는 제가 함께 하는 길이라서 어떻게든 프라자호텔 쪽으로 가서 건널목을 이용해 볼 욕심이었는데, 지하철역 입구 옆에서 경찰이 봉쇄를 하고 있더군요. 막 봉쇄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오던 경찰방패 앞에 한 시민이 촛불을 켜고 주저 앉았습니다. 큰 소리의 항의도 무슨 몸짓도 없이 그저 결연하게 주저앉은 그 분을 보면서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경찰이 지하도 입구와 이 분의 뒤쪽으로 더 전진한 지점까지 나아간 곳을 폐쇄해 버렸기 때문에 이 분은 꼼짝없이 경찰에 포위되어 고립된 형국이었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저항하시는 분들 보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밖으로 나가려면 나갈 수 있었지만, 이 분을 두고 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연행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요. 대략 한 시간 반 이상을 여기 서있었습니다. 저희 말고 연세드신 한 분과, 세 명의 여학생들도 이 분 주변에서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지하도 안쪽과 프레스센터쪽의 봉쇄선에서는 간혹 시민들과의 마찰이 있고... 영 분위기 안좋았습니다.
제게 카메라를 향하고 채증사진도 찍더군요. 길 가다가 가지말라고 해서 그 자리에 서있는데, 채증하는건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구호를 외쳤나, 경찰한테 폭언을 했나, 아니 공손하게라도 항의를 했나, 촛불을 들었나. 그저 보도를 걷다가 멈춰라 하길래 멈췄고, 다른 데로 이동해 달라는 요구도 없길래 그냥 서있었는데 채증을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이런 짓을 당당히 하는 집단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도 이 분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앰네스티에서 현장 파악하러 나온 일행이 왔길래 봉쇄선 밖으로 나왔습니다. 상당히 시간을 낭비했고, 다리도 무척이나 아팠지만 - 또 압니까? 앉으면 잡아갈지? - 그래도 혼자서는 무언가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스센터 앞으로 이동해서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집회를 잠시 보았습니다. 동시에 너무 많은 분야에서 사건이 터져서 참 정신이 없습니다. 이러니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너무 배가 고파서 시청 뒤 쪽으로 이동해서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일행은 모두 6명. 저와 아내를 빼고는 모두 저녁을 먹었음에도 꿋꿋이 함께 해주는 동지애가 고마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또 막막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수소문 결과 한국은행 쪽에 있다고 하더군요. 움직이려는 순간 깨졌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도 깨졌네요. 나중에 알아보니 이날 한국은행 앞에서 많은 분들이 연행되셨더군요. 시청 옆에서 너무 오래 지체하지 말고 저녁을 좀 더 일찍 먹을 걸 하는 생각도 들고, 저희 때문에 중요한 상황을 놓친 앰네스티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좀 더 지체하다가 연락을 받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움직이는 동안에도 계속 목적지가 달라지고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늦을까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구요. 가다보니 비옷을 입은 여성 한 분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계시더군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함께 가시기를 제안했습니다.
결국 도착한 것은 다시 탑골공원 앞. 저희가 좀 일찍 도착해서 조용한 상황이더군요. 종로2가에서 탑골공원까지의 보도에는 이미 경찰들이 잔뜩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황 같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탑골공원 옆에 있는 경찰지구대 담벼락에 모여 앉았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게된 여성분은 남편의 반대로 일곱시쯤 도착하는 바람에 시위대와 합류하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조곤조곤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말씀도 재미나게 하시고 참 선한 분 같았습니다. 꾸준히 혼자서 나오고 계신다더군요. 혼자서는 힘들지 않느냐니까 집회에서 만난 분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아서 함께 하기도 하고, 정보도 얻으신다더군요.
그렇게 촛불은 느리지만 스스로를 조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뵙는,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민들을 보면, 그리고 이 분들이 계속해서 나오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랬지만, 이 분 역시 소위 정치적인 색깔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몇 분씩 그룹으로 나타나서 우리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우리 뒤 쪽으로 와서 앉아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주위에 앉은 시민 수도 꽤 되더군요. 농담삼아 '우리끼리 집회해도 되겠다. 노래라도 불러볼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 오신 듯한 분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 분씩 모셔서 우리랑 합류시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을지로 쪽에서 종로2가를 향해 대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길을 건너 자리를 옮겼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이날 제가 본대를 목격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T.T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깃발들이 뒤로 빠지면서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깃발이 빠진 것이 먼저가 아니었나 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일종의 페이크 같기도 했습니다. 뭔가 성의없게 들리는 경고방송과 함께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란 물대포와 하얀 물대포를 쏘면서 살수차가 전진하고, 경찰이 그 바로 앞에서 돌격하고 있었습니다. 두 색의 물대포는 다른 상황에서 보았다면 예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경찰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살수차와 함께 진압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2차대전시 독일의 전격전이 생각나더군요. (낮에 경찰이 휴대용 살수기에 물을 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색소통에는 식용색소라고 써있더군요.)
진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황급히 뒤로 후퇴했습니다. 도로는 경찰이 장악했고, 우리는 계속해서 보도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사복경찰이 시민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누군가를 쫓아 옆 골목으로 따라들어갔고, 보도에 있던 시민들이 번개같이 따라갔습니다.
저도 바로 따라갔는데, 이미 상황이 끝나있더군요. 우리 중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붙잡고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맞을뻔 한걸 구해준 것 같았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나온 인권침해감시단이 조끼를 입고 격력하게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혼란스럽고,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깐 지체했는데, 시위대는 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는 일단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우선 시위대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찾을 수가 없어서 을지로 쪽으로 향했는데, 도로에는 많은 사복경찰이 서있었습니다. 분위기 정말 살벌하더군요. 물론 정복은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었구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다시 연락을 취해보았습니다. 명동성당, 충무로, 다시 동대문방향으로 숨가쁘게 위치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건 뭐 시위대 전원이 축지법이라도 쓰는지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이지 그렇게 열심히 걸어본 것은 오랫만이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시위대는 안보이고, 도로를 달려가는 경찰버스와 도로 반대편에서 역시 열심히 걸어가는 경찰병력 뿐. 경찰 구경은 정말 실컷 했네요. 나중에는 경찰이 아예 우리쪽 도로로도 지나가더군요.
아픈 발을 끌며 헐떡거리며 동대문운동장에 거의 다 도착했으나 여전히 시위대의 행방은 오리무중. 여기서 계속 함께 하신 그 여성분께 제 명함을 드렸습니다. 평화로운 날이 오면 함께 일해보자고... 그랬더니 명함을 들여다보시던 그 분 말씀이, 자신도 우리 회원이시라고. 몇 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그것만은 몰랐네요.
현장에서 앰네스티라는 것을 가급적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버리다 보니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2년동안 회원이셨다면서, 원래 좋은 일하는 단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 앰네스티의 활동을 보고 자발적으로 회비를 인상해주셨다더군요. 바로 그 회비 덕분에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고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회원들을 어떻게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동력으로 끌어들이냐에 우리 운동의 한국사회에서의 정착 가능성이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거나 앰네스티 모임에서도 꼭 만나고 싶은 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대문 방향으로 가다보니 많은 시민들이 우리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시위대가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벌써 해산했다고 하시더군요. 이게 뭥미. (죄송합니다 -_-;;;) 거기까지 힘들게 이동해서 해산하는건 도대체 어디 식입니까? 왜 사람 힘들게 만들고.... 무슨 체력단련도 아니고...
어쨌거나 동대문쪽으로 가니 경찰들이 이미 깔리기 시작했더군요. 여기서 잠시 있다가 그 여성분은 남편께서 데리러 오셨다며 떠나셨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니, 지하상가입구에 여경부대가 배치되어 있고, 지하도 내에는 시민들이 모여계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색소가 묻어 계시던데, 안전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상황이 없는채로 열한시쯤 되어 집에 아이 혼자 있는 우리 부부도 다른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떠났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맞은 편에서 오고 있는 우리 일행을 다시 만났습니다. 좀 황당했지요.
어느 상점에서 시민들이 연행위기에 있어 가보려고 한다더군요. 잘가라고 하고 헤어졌는데... 그후에 사건이 벌어졌을 줄이야. 그 후 연행되어 버렸습니다. T.T 나중에 보니 그 시간 이후에 많은 분들이 연행된 모양이더군요. 저희는 집에 잘 내려왔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런 하루였습니다.
글이 지옥같이 길어 죄송합니다. 독자를 위해 썼다기 보다는 저의 기록을 위해 쓴 글이 되었네요. 설마 여기까지 읽는 분들은 거의 안계시겠죠?
집회 이후에도 아내에게 '저 떡 언제 나눠줄까'라는 등의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핀잔을 제대로 듣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떡은 이 날 밤에 비극적인 결말과 연결되고 맙니다.
한 손에 바로 이 떡을 꼭 쥔 채 연행되고만 우리 앰네스티의 이모씨. 떡에 집착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저 떡이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던 듯 합니다. 어쨌거나 저는 결국 저 떡의 맛을 못보고 말았습니다. (떡열사의 연행이야기는 글이 너무 길어서 다음 글에서 다룹니다. 떡열사라고 했다고 화내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러고 보면 좀 떡하고 닮은듯...)
집회 중에 평화행동단 몇 분이 저희 앞을 지나치셨습니다. 그 중에 한 어여쁜 처자분의 얼굴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야 뭐 사람 기억못하기로는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므로 생각이 날리가 없죠.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혹시 또랑님 재판에서 본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지나가는데 붙잡고 여쭤보니 역시나 그랬습니다. 몇 시간을 얼굴 보고 있었으면서도 몰라본 저도 굉장하고, 그걸 맞추는 아내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분, 연행되셨을까요? 무척 걱정이 됩니다.
집회가 끝나고 보니 상당히 많은 분들이 계시더군요. 우리 지역에서 올라오신 분들도 깃발을 들고 계시고, 압권은 역시 흑사단. 간지 만땅 사진이 있지만, 얼굴이 너무 잘나와서 올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평화행동단이 역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아 참, 집회 시작때 쯤 한복 치마저고리로 들어오시던 분들도 기억나네요.
집회 후 일부 깃발이 거리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물어보니 대학로에 합류하러 간다는군요. 저희에게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왜 지하철 타고 간다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촛불다방에서 맛있는 냉커피도 얻어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전에 앰네스티에서 일하셨던 박모씨를 만났습니다. (이 박모씨, 나중에 벌금이나 손해배상이라도 크게 맞으면 개인적으로 모금이라도 해야 하겠습니다. 흑흑)
이제 어떻게 되는거냐고 물어보니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헐.... 조금 기다려보다가 지겨워져서 이번엔 좀 범위를 넓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만의 부부동반 서울나들이니까요. 멀리 갔다가는 또 사람들을 잃어버릴까봐 창문이 있는 주변 커피집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커피집 창 밖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_-;;
그 비싼 커피집에 거의 예외없이 쌍쌍이 앉아 여름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 친구들, 저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싼 집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으면, 세상에 불만을 가질 이유도 자격도 없을 것 같다는 이상한 결론이 났습니다. 88만원 세대도, 구직난도 딴 세상 이야기 같더군요. 세상이 저렇게 행복한데 뭐하러 복잡한 세상사를 따져볼까요? <-- 비뚤어진 생각이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학로로 떠난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은 부지 하세월일 것이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주변을 돌면서 자기 주장을 알리기라도 하지... 하는 좀 철모르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4시 반에 YTN 앞에서 뭐가 있다는 이야기에 의지해서 그 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거기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가는데까지 가보는 거죠. 거리 상황도 살필 겸... 어쨋든 둘이 함께 있으니 이동하는 과정도 나름 즐겁더군요. 혼자일 때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광화문 거리가 참 한산하더군요. 경찰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버스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평화로운 거리풍경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올림픽경기를 보면서 응원하고 있더군요. 전의경들도, 지휘관들도 느긋한 모습으로 중계를 보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시청 앞에서 봉쇄중인 경찰을 보면서 어느 사회나 참 불공평하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 참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런거나 보면서 헬렐레 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기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어릴때 교회 부흥회에서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열광하시던 할머니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착잡함, 곤혼스러움입니다. 결국 세상은 불편하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일률적으로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네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분들이 건 플래카드도 있더군요. 촛불집회 하는 시민들이 건 플래카드도 이렇게 놔둬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권력의 정당성은 합법성 외에도 공평성이 담보될 때만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합법성은 정당성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준비되고 있는 건지 끝난건지 알 수 없는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서 시청역 4번 출구까지 왔을 때, 우리의 나름대로 즐겁던 서울나들이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지하도를 적극 혐오하는 아내와, 역시 계단에는 취미가 없는 제가 함께 하는 길이라서 어떻게든 프라자호텔 쪽으로 가서 건널목을 이용해 볼 욕심이었는데, 지하철역 입구 옆에서 경찰이 봉쇄를 하고 있더군요. 막 봉쇄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오던 경찰방패 앞에 한 시민이 촛불을 켜고 주저 앉았습니다. 큰 소리의 항의도 무슨 몸짓도 없이 그저 결연하게 주저앉은 그 분을 보면서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경찰이 지하도 입구와 이 분의 뒤쪽으로 더 전진한 지점까지 나아간 곳을 폐쇄해 버렸기 때문에 이 분은 꼼짝없이 경찰에 포위되어 고립된 형국이었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저항하시는 분들 보면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밖으로 나가려면 나갈 수 있었지만, 이 분을 두고 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연행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요. 대략 한 시간 반 이상을 여기 서있었습니다. 저희 말고 연세드신 한 분과, 세 명의 여학생들도 이 분 주변에서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지하도 안쪽과 프레스센터쪽의 봉쇄선에서는 간혹 시민들과의 마찰이 있고... 영 분위기 안좋았습니다.
제게 카메라를 향하고 채증사진도 찍더군요. 길 가다가 가지말라고 해서 그 자리에 서있는데, 채증하는건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구호를 외쳤나, 경찰한테 폭언을 했나, 아니 공손하게라도 항의를 했나, 촛불을 들었나. 그저 보도를 걷다가 멈춰라 하길래 멈췄고, 다른 데로 이동해 달라는 요구도 없길래 그냥 서있었는데 채증을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이런 짓을 당당히 하는 집단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도 이 분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앰네스티에서 현장 파악하러 나온 일행이 왔길래 봉쇄선 밖으로 나왔습니다. 상당히 시간을 낭비했고, 다리도 무척이나 아팠지만 - 또 압니까? 앉으면 잡아갈지? - 그래도 혼자서는 무언가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스센터 앞으로 이동해서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집회를 잠시 보았습니다. 동시에 너무 많은 분야에서 사건이 터져서 참 정신이 없습니다. 이러니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너무 배가 고파서 시청 뒤 쪽으로 이동해서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일행은 모두 6명. 저와 아내를 빼고는 모두 저녁을 먹었음에도 꿋꿋이 함께 해주는 동지애가 고마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또 막막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수소문 결과 한국은행 쪽에 있다고 하더군요. 움직이려는 순간 깨졌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도 깨졌네요. 나중에 알아보니 이날 한국은행 앞에서 많은 분들이 연행되셨더군요. 시청 옆에서 너무 오래 지체하지 말고 저녁을 좀 더 일찍 먹을 걸 하는 생각도 들고, 저희 때문에 중요한 상황을 놓친 앰네스티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좀 더 지체하다가 연락을 받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움직이는 동안에도 계속 목적지가 달라지고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늦을까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구요. 가다보니 비옷을 입은 여성 한 분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계시더군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함께 가시기를 제안했습니다.
결국 도착한 것은 다시 탑골공원 앞. 저희가 좀 일찍 도착해서 조용한 상황이더군요. 종로2가에서 탑골공원까지의 보도에는 이미 경찰들이 잔뜩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황 같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탑골공원 옆에 있는 경찰지구대 담벼락에 모여 앉았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게된 여성분은 남편의 반대로 일곱시쯤 도착하는 바람에 시위대와 합류하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조곤조곤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말씀도 재미나게 하시고 참 선한 분 같았습니다. 꾸준히 혼자서 나오고 계신다더군요. 혼자서는 힘들지 않느냐니까 집회에서 만난 분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아서 함께 하기도 하고, 정보도 얻으신다더군요.
그렇게 촛불은 느리지만 스스로를 조직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뵙는,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민들을 보면, 그리고 이 분들이 계속해서 나오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랬지만, 이 분 역시 소위 정치적인 색깔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몇 분씩 그룹으로 나타나서 우리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우리 뒤 쪽으로 와서 앉아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주위에 앉은 시민 수도 꽤 되더군요. 농담삼아 '우리끼리 집회해도 되겠다. 노래라도 불러볼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 오신 듯한 분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 분씩 모셔서 우리랑 합류시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을지로 쪽에서 종로2가를 향해 대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길을 건너 자리를 옮겼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이날 제가 본대를 목격한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T.T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깃발들이 뒤로 빠지면서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깃발이 빠진 것이 먼저가 아니었나 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일종의 페이크 같기도 했습니다. 뭔가 성의없게 들리는 경고방송과 함께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란 물대포와 하얀 물대포를 쏘면서 살수차가 전진하고, 경찰이 그 바로 앞에서 돌격하고 있었습니다. 두 색의 물대포는 다른 상황에서 보았다면 예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경찰이 이렇게 공격적으로 살수차와 함께 진압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2차대전시 독일의 전격전이 생각나더군요. (낮에 경찰이 휴대용 살수기에 물을 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색소통에는 식용색소라고 써있더군요.)
진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황급히 뒤로 후퇴했습니다. 도로는 경찰이 장악했고, 우리는 계속해서 보도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사복경찰이 시민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것입니다. 누군가를 쫓아 옆 골목으로 따라들어갔고, 보도에 있던 시민들이 번개같이 따라갔습니다.
저도 바로 따라갔는데, 이미 상황이 끝나있더군요. 우리 중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붙잡고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맞을뻔 한걸 구해준 것 같았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나온 인권침해감시단이 조끼를 입고 격력하게 경찰에게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혼란스럽고,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깐 지체했는데, 시위대는 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는 일단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우선 시위대를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찾을 수가 없어서 을지로 쪽으로 향했는데, 도로에는 많은 사복경찰이 서있었습니다. 분위기 정말 살벌하더군요. 물론 정복은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었구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다시 연락을 취해보았습니다. 명동성당, 충무로, 다시 동대문방향으로 숨가쁘게 위치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건 뭐 시위대 전원이 축지법이라도 쓰는지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이지 그렇게 열심히 걸어본 것은 오랫만이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시위대는 안보이고, 도로를 달려가는 경찰버스와 도로 반대편에서 역시 열심히 걸어가는 경찰병력 뿐. 경찰 구경은 정말 실컷 했네요. 나중에는 경찰이 아예 우리쪽 도로로도 지나가더군요.
아픈 발을 끌며 헐떡거리며 동대문운동장에 거의 다 도착했으나 여전히 시위대의 행방은 오리무중. 여기서 계속 함께 하신 그 여성분께 제 명함을 드렸습니다. 평화로운 날이 오면 함께 일해보자고... 그랬더니 명함을 들여다보시던 그 분 말씀이, 자신도 우리 회원이시라고. 몇 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그것만은 몰랐네요.
현장에서 앰네스티라는 것을 가급적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버리다 보니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2년동안 회원이셨다면서, 원래 좋은 일하는 단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 앰네스티의 활동을 보고 자발적으로 회비를 인상해주셨다더군요. 바로 그 회비 덕분에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고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회원들을 어떻게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동력으로 끌어들이냐에 우리 운동의 한국사회에서의 정착 가능성이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거나 앰네스티 모임에서도 꼭 만나고 싶은 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대문 방향으로 가다보니 많은 시민들이 우리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시위대가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벌써 해산했다고 하시더군요. 이게 뭥미. (죄송합니다 -_-;;;) 거기까지 힘들게 이동해서 해산하는건 도대체 어디 식입니까? 왜 사람 힘들게 만들고.... 무슨 체력단련도 아니고...
어쨌거나 동대문쪽으로 가니 경찰들이 이미 깔리기 시작했더군요. 여기서 잠시 있다가 그 여성분은 남편께서 데리러 오셨다며 떠나셨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니, 지하상가입구에 여경부대가 배치되어 있고, 지하도 내에는 시민들이 모여계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색소가 묻어 계시던데, 안전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상황이 없는채로 열한시쯤 되어 집에 아이 혼자 있는 우리 부부도 다른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떠났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맞은 편에서 오고 있는 우리 일행을 다시 만났습니다. 좀 황당했지요.
어느 상점에서 시민들이 연행위기에 있어 가보려고 한다더군요. 잘가라고 하고 헤어졌는데... 그후에 사건이 벌어졌을 줄이야. 그 후 연행되어 버렸습니다. T.T 나중에 보니 그 시간 이후에 많은 분들이 연행된 모양이더군요. 저희는 집에 잘 내려왔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그런 하루였습니다.
글이 지옥같이 길어 죄송합니다. 독자를 위해 썼다기 보다는 저의 기록을 위해 쓴 글이 되었네요. 설마 여기까지 읽는 분들은 거의 안계시겠죠?
'지부장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이징올림픽] 아직 김정일한테 한참 더 배워야 해 - 장이머우 (0) | 2008/08/25 |
|---|---|
| [앰네스티와 촛불집회] 법무부, 국제앰네스티에 서한 보내다 (10) | 2008/08/25 |
| [앰네스티와 촛불집회] 2008년 8월 15일 촛불집회 관찰기 (12) | 2008/08/20 |
| 7월 18일, 앰네스티 사무실에 시위 발생 (2) | 2008/08/13 |
|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강연 (0) | 2008/08/11 |
| [베이징올림픽] 정치적이지 않은 올림픽은 없다 (4) | 2008/08/08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동대문으로 갈 때 '이건 아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는 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 팀들과 돌아서려고 했었죠.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동대문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든 깃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깃발과 시민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을 버리고 갈수는 없는 것이었거든요. 늘 그렇지만요. 하는수 없이 따라 갔는데 경력이 다 배치된 후 선두에 섰던 사람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비슷한, 해산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저를 비롯하여 저희 팀원이 함께 그 사람에게 항의했습니다. 그 대책위 소속 사람은 경찰이 오니까 그제서야 입을 열더군요. 아...정말 그날 생각하면... 그렇게 해산하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무슨 지론인지... 도저희 고함을 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2008/08/20 10:25결국 택시를 타고 다시 탑골 쪽으로 왔는데, 끊임없이 일은 일어났고, 그러던 중 앰네스티 직원분도 연행되신 것 같습니다. 인권위 활동가도 뛰다가 다쳐서 조심스럽게 치료해서 빼 냈더니, 결국 옆에서 항의하던 다른 활동가를 연행해 가 버렸고요...
제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시민을 위할 바에는 그냥 집에서 월드컵이나 보는게 제일 안전하고 좋겠지요. 암튼 구경꾼(-_-;
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이 참 많이 있었지요.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다른듯...
2008/08/20 17:22그런데 Jin님은 어떤 팀이셨길래, 인권위 활동가도 빼내주시고... 저희 직원분도 사실 옆에서 연행하는 것 항의하다가 잡혀가신 거에요. T.T (한 손에 떡을 꼬옥 쥐고... 흑흑)
고생하십니다.
2008/08/20 15:58늘 한결같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2008/08/20 17:22제가 생각하는 식으로 시민을 위할 바에는 그냥 집에서 월드컵이나 보는게 제일 안전하고 좋다는 말씀이신 것인가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몰라서 여쭙는 것입니다.;;;
2008/08/21 16:05그 시간에 종각과 탑골에 시민들이 다치고 연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대문 방향에는 저와 함께한 팀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팀인지는 제 글을 이해하셨다면 아실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인원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동대문에 선두가 멈춰 섰을 때, 거기에 모인 대부분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고 가만히 서 있는 동안 경력이 동원되었고, 앞에 선 사람이 해산을 말하자 경력이 갑자기 진압을 하면서 시민들을 연행해 갔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만큼 보셨고, 얼마만큼 겪으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현장에 다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상황에서 시민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연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까지도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이쪽 저쪽에서 맞아 가면서도 촛불을 든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발휘하며 움직였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월드컵이나 라든지 올림픽이나 보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여기에 글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예전에는 동대문 방향으로 왔던 사람들을 진압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날 처음 그런 일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각하게 선두에서 이끈 그 한 사람에게 따졌던 것입니다. 더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연행되신 직원 분이 누구신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동대문에서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난 후, 택시를 타고 탑골로 왔었을 때 제가 생각하는 분이 맞다면 그분과 인사도 했었습니다.
헐... 그럴리가요. 쓰신 댓글 중 "그렇게 해산하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쓴 것이지요. 그러니까 Jin님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 논평한게 아니고... 인용하신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해 저도 열받은 겁니다. 오해를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얼마나 화나셨겠어요.
2008/08/21 20:38제 글에도 나오듯이, 탑골 쪽에서 잠깐 상황 정리되는거 보고 바로 시위대 따라 갔는데, 죽도록 걸었음에도 동대문 도착하자 해산했다고 다들 반대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시더라구요. 그러니 저도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도대체 동대문까지 간 이유가 뭔지...
2008/08/21 20:48그나저나 바로 그런 이유로 그날 저는 시위대는 탑골쪽에서 열시 전에 잠깐 본 것 외에는 거의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댓글 쓰신걸 아무리 읽어봐도 어느팀이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_-;;;
근데, 저희 직원분과 인사를 하셨다면... 평소에 아는 사이? -_-++ 하, 어떤 분이신지 진짜 궁금해지네요. 혹시 연행현장은 목격 못하셨나요?
저로서는 신분과 소속이 공개되어 있는 이 블로그에 쓸 수 있는 말도, 없는 말도 있습니다. 그 점은 이해해주시구요. 하고싶은 말은 다 못하고 사니까 답답하네요.
그런데 그 한 사람이 누굽니까? 무진장 궁금한데, 다들 비난만 하시지 밝히지를 않으시니... 아직도 다함께일까요?
말씀 남겨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portico 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많은 부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입다물고 살기 때문에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2008/08/22 11:04직원분께서 연행되는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여기 저기 난리였기 때문에요. 떡은 우리에게 한 박스 주시면서 시민들께 나누어 주시길 부탁하셔서 우리가 직접 나누어 드렸습니다. 다음에 현장에서 뵙게 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누구신지 알 것 같습니다.
비밀댓글입니다
2008/08/22 11:07아아~ 한 일도 없지만, 그 떡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Jin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군요.
2008/08/22 12:40이번 촛불을 보면서 참으로 많이 힘도 얻고 희망도 가지지만, 제일 속상한 부분은 말 안듣는 정부라기 보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절절한 소망과 희생을 자꾸 허탈하게 만드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좌절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희생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Jin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떡열사(?) 분의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뉴스에서 보고 한참동안 전 넋이 나가있었습니다. 무사히 돌아왔단 소리를 듣고도 안도도 했지요. 저 끝까지 읽었습니다! ^^:
2008/08/25 15:49안그래도 오늘 그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우선 베이징올림픽 이야기부터 하나 올립니다. 며칠내로 올릴게요. 그나저나 끝까지 읽으셨다니.. 무섭군요. -_-;;;
2008/08/25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