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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Q/10A

스스로의 앰네스티 활동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 위한 10문10답입니다.
Q1 : 인권을 처음 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토론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함께 자료를 구해보면서 참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저는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은데, 토론을 위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더라구요.

당시의 토론과 토론준비가 사형제도를 떠나, 인권의 기초랄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의 기본원칙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토론 이전과 이후의 삶은 같을 수가 없었죠. 지금이야 사형제도 토론은 아주 흔하지만, 당시(1977년)만 해도 사형폐지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된지 얼마 안된 때라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지요.

당시에 토론의 기회를 주신 분이 바로 아직도 앰네스티 회원으로 계시는 김상헌선생님이신데, 중학교 때 부터 교회에서 저희들을 지도해 주셨죠. 저를 비롯해 친구들이 모두 너무 존경하는 분이었고, 지금까지도 삶 자체가 교훈이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결국 이분에 의해 제가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지금 스스로를 보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질문자: 제가 보기에도 그러네요. 우하하 - 일동 썰렁)
Q2 : 앰네스티는 언제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A : 고등학교 3학년 때, 11월에 대학입시를 마치고나서 별로 할 일이 없었어요.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마침 김상헌선생님께서 집으로 초청해서 앰네스티 활동에 대한 영화(8mm)를 보여주셨어요. 그게 아마 1981년에서 1982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이었죠. (나이 다 뽀록난다~)

당시 김상헌선생님은 앰네스티 회원으로서 매주 하루를 앰네스티 사무실에 가서 봉사하고 계셨어요. 너무 좋은 활동이니까 함께 해보자고 저희를 초청하신거죠.

그 영화제목이 '양심수(Prisoner of Conscience)'였는데, 인권침해 피해자를 중심으로 앰네스티가 어떻게 활동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지 보여주는 내용이었어요.
Q3 : 그 영상을 보고 바로 가입하셨나요?
A : 글쎄요. 처음 그 영화를 본 소감은 앰네스티 운동이라는 것이 참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의 지향이나 활동의 원칙도 마음에 들었구요. 그렇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80년 광주의 기억이 생생하고 전두환의 폭압적 통치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그 당시, 대학 입학을 앞둔 제게는 앰네스티운동이 마치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애틋한 취미생활 처럼 보였거든요.

엄혹한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자신의 시간을 바쳐서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4 :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게 되었나요?
A :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체험한 억압적 분위기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분위기였죠. (지금도 좀 그렇지만...) 꿈꾸던 연극반에 들어가서 첫 모임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 보안유지의 중요성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대학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뭐 항상 바쁘게 할 일이 있는게 아니더라는거죠. 학생운동하라고 불러주는 선배도 없고... 제가 좀 싹수가 노랗게 생겼었는지? 연극반 활동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고... (질문자: 보안유지를 못하게 생겼나 보죠. 하하하) 하다못해 그해 1학기초에는 그 흔한 학내시위도 별로 없었어요.

결국 당시에 제가 처한 처지로는 한반도의 현실 때문에 앰네스티를 할 수 없다는게 변명이 안되더라구요. 둘 다 할 수 있는데,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못한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그래서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무진장 부지런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활동들까지 생각해 보면... 지금이라면 그 중 하나만 하래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요. 학교생활, 교회활동(운동?), 앰네스티 활동, 연극반(오래 안했지만), 기타 등등 기타 등등...
Q5 : 처음에 하게 되신 일은 뭔가요?
A : 주로 번역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긴급구명활동이나 다른 짧은 앰네스티 문서들을 번역했죠. 사실 제가 번역한 것이 질이 낮아서 제대로 사용이나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번역을 하다보니까 앰네스티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덕분에 번역실력도 상당히 늘었구요. 아직도 영어시험 보면 엉망이지만, 실전영어는 좀 됩니다.

자원봉사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회원들에게 매월 보내는 소식지를 발송하는 일이었습니다. 봉투에 주소와 우표를 붙이고, 소식지를 잘 접어서 봉투에 넣고, 다시 봉투를 봉하는 일이었지요.
(질문자: 아니 도대체 그게 왜 좋았던 겁니까?)

단순작업인데, 하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져요. 그것도 나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숙련도 되고, 또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하게 궁리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이것저것 대화한 것이 앰네스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다 해놓고 쌓여있는 봉투를 보면 뿌듯하잖아요.
Q6 : 앰네스티운동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던 겁니까?
A :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서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시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작은 일이라도 하려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실제 해보면서 느낀 건데, 이런 작은 일이야말로 어떤 점에서는 더 큰 결단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순간의 용기로 되는 일이 아니고, 정말 장기간에 걸쳐 작은 희생을 쌓아가야 하는 일이죠. 내가 뭘 한다고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 돈과 시간 써가면서, 게다가 회비까지 내야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앰네스티 회원들을 존경합니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상황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시는 시민들과도 공통점이 있군요. 지금은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당시에는 그런 작은 희생을 쌓아가는 분들이 별로 없었어요. 너무 하찮은 일이라서, 혹은 인권이라는 단어가 무서워서...
Q7 : 그게 전부에요? 또 다른 이유는 없었나요?
A : 아주 많았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운동인데,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어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나라도 해야 하겠다.

죽을 때, 내가 살면서 진짜 괜찮은 일 하나는 했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

인권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니까, 분명히 좋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구나.

또한 그때 회원들 회비 모아서 활동하는 시민단체가 거의 없었는데, 앰네스티는 그랬구요.

활동원칙을 보면 이거야 말로 가장 급진적인(radical, 근본주의적인?) 운동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8 : 앞에서 한국상황을 언급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한 갈등은 없었나요?
A : 존경하는 선배들이, 당장 급한데 그런거 뭐하러 하냐고 물어볼 때 상당히 괴로웠죠. 그런데 열심히 하다보니까 다들 이해해주시고 심지어 도와주시기도 하더라구요.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정말 민주화가 되면 민주주의를 잘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연습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앰네스티야말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연습하기 좋은 공간이다. 이 앰네스티를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뜨리고 싶다.

또한 한국이 전세계 앰네스티 회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우리라고 받기만 할 수 있느냐... 우리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남을 돕겠다고 하면 그날이 오겠느냐. 결국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전세계의 시민들이 연대할 때만 진정한 인권이 보호받는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 생각은 한국상황을 핑계를 앰네스티를 안할 명분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앰네스티 핑계로 한국상황에 무심할 변명도 안되다는 거에요. 어느 쪽에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병행하는 거지요.

이번 촛불집회때, 당시 저희 과에서 제일 열심히 학생운동하던 친구가 앰네스티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앰네스티가 진정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많이 기뻤습니다.
Q9 : 당시 상황에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육체적으로 힘든거야 있었지만, 그건 뭐 보람이니까 상관 없구요....

제 활동에 대해 매일 걱정하시는 부모님, 특히 어머님께 죄송했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정보과 형사가 저희 집에 찾아와서 제가 매우 위험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다가는 나중에 취직도 못할거라고 협박을 했더라구요.

당시에 그 일을 제게 비밀로 하고 제 앰네스티활동을 용납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거든요.

또 앰네스티 하다가 경찰에 끌려간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금방 나왔어요. 검문검색에서 앰네스티 자료가 나와서 잡혀간건데, 잡혀있다 보니까 연락받고 온 종로서 정보과 형사가 풀어주었어요.

이런 이야기, 얼마 전까지는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같이 들렸는데, 지금 하다보니까 갑자기 현재상황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헐.... 먼 길을 돌아서 원점으로 다시 온 것 같기는 하지만, 거리를 채우던 시민들을 생각하면 그동안 얻은 것도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Q10 : 앰네스티 활동을 시작한 것을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A : 제가 굉장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앰네스티운동을 접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행운이고 아주 귀한 기회였으니까요.

앰네스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었겠지요. 더 좋은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앰네스티를 통해 제가 얻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런 점에서 저를 앰네스티 운동으로 이끌어주신 김상헌선생님과 미래의 리더를 기르겠다며 저를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해주시고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당시 윤현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하는 인터뷰를 마칩니다.


마침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관리자 화면에 들어왔다가 새단장한 에디터에서 몇 가지 서식을 제공하길래 그 중의 하나인 10Q/10A를 이용해서 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새로운 에디터에 적응도 할 겸, 새로운거 나오면 써보는 즐거움도 누릴 겸...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긴박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일수록 한번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서있는 곳과 그곳에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혼잣말... 그러나 자주 하게 되지는 않는... "내가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거지?"를 실행에 옮겨 보았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 앰네스티면 더욱 좋구요 -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다른 다른 이유와 다른 생각으로 오시겠지만, 모두 합류하여 가다보면 큰 방향은 같지 않을까요? 초심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모아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나저나 대답하는 건 쉬운데 질문을 만드는게 아주 어렵고 고약스럽군요. 누누한테 대신 질문만 좀 만들어 달랠걸 그랬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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