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재판장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일면식도 없이 이렇게 불쑥 글월을 올리게 되어 우선 사과말씀 드립니다.
제 소개를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고은태입니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고,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인권운동에 참여한 것이 이제 28년째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펜을 들게 된 것은 현재 재판 중에 있는 박래군씨에 대해 몇 말씀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비록 제가 인권운동에 관계하고 있지만, 이 탄원서는 제 개인적인 견해이며, 한 명의 대한민국 시민의 자격으로, 그리고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의 자격으로 작성되었으며 어떤 집단이나 단체의 공식적인 견해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6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공권력과 시민이 충돌하여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어떤 문명국가에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이었든 이런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가장 중요한 일은, 사건에 관련되지 않은 제3자에 의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은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비슷한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용산참사와 관련한 대한민국의 상황은 정부에 의존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심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이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이고, 행정부의 모든 권력기구가 경찰을 옹호하는 것이 명백한 가운데, 이들이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인 조사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매우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주체를 만드는 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중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태를 수습하고 해결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습이 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 누군가가 나서서 유족들을 대변하고 중재하는 것은 사건의 해결이 폭력과 일방적인 희생에 기초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라 믿습니다.
박래군씨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대책위원회를 맡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유족을 대변하고 상황을 원만히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상상하기도 힘든 무거운 형량을 구형 받고 이제 재판장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은 본질적으로 용산참사의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양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원만한 사태수습의 방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으며 누군가는 대변해줘야 할 유족들을 위해 나선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한 일이 단지 유족을 위한 일을 넘어 한국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측도 대화에 응했고, 요구사항의 일부를 받아들였으며, 결국 합의를 이룬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맡은 박래군씨가 중형을 받고 오랫동안 갇혀있는 몸이 되는 것은 단지 박래군씨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세계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할 정의와 인권에 반하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박래군씨처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회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록 법의 정의를 실현하고 실정법에 맞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재판장님의 임무이자 책임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법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푸셔서 우리 사회가 박래군씨의 선한 의도와 자기 희생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그가 장기간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것은 당장 우리 사회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크나 큰 손실이 될 것입니다.
제가 박래군씨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지만 가깝게 지낸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박래군씨는 늘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명확하게 유가족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위치인 대책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도 항상 양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균형 잡힌 사고에 기반하여 상황을 풀어가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재판장님께서도 그를 법정에서 만나보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아는 박래군씨는 매우 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커다란 사회문제에 부딪힐 때나 혹은 개인적인 삶 속에서 갈등상황에 처할 때나 그는 늘 폭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대화와 논의를 통해 문제를 풀고자 노력합니다. 설사 그가 대책위 위원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폭력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의도나 바라는 바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박래군씨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에서 평화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는 박래군씨가 이번 사건으로 구치소에 있는 동안 그와 몇 번의 편지를 교환한 일이 있습니다. 일 년 동안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 사실상의 구금상태에 연이은 구치소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대해 단 한번도 불만을 표하거나 스스로의 상황을 한탄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 상황에서도 구치소의 상황 중에서 합리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박래군씨는 그런 사람이며, 비록 그가 국가가 주는 월급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의 눈이 미치지 않고 행정력이 닿지 못하는 소외된 곳에 늘 주목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이번 사건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권단체이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되었으며, 그를 위한 국제적인 탄원노력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교도소에 갇히게 되면,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상징하는 인물이 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믿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일로 일 년 가까운 기간을 인신의 자유가 크게 제약된 상황에서 사실상의 구금상황에 있었습니다. 또한 이미 구치소에서 상당한 기간을 갇혀있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미 이것만으로도 박래군씨가 부득이하게 책임져야 할 실정법 상의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번 재판은 재판장님의 소관이며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시는데 있어 실정법에 근거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에 의존하여 탄원을 드리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이번 재판이 후일 또 다른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되거나 재심이 필요한 사건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히 기대하기로는 박래군씨가 재판장님의 결정을 통해 석방되어 대한민국에 정의와 인권이 살아있고 그 최후의 보루가 바로 사법부임을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 증명하는 생생한 사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혹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의 형량을 최소한으로 줄여주셔서 그에 대한 법적 조치가 정부에 의한 보복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인권을 책임져야 하는 결정적인 임무에 있어 국민들이 오로지 사법부에만 의지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민망하게 생각하며, 재판장님이 처해계신 힘든 상황에 대해 위로와 감사를 함께 드립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최후의 안전장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한발자국 나아가는 계기가 되게 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긴 탄원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에 강건하고 큰 성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12월 13일
고 은 태 올림
이 글은 박래군선생을 위해 1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입니다. 이제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부디 2심에서는 1심보다 훨씬 진일보한 판결이 이루어져,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억울한 범죄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안녕하세요^^ 계속 이어지는 한파로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버린 요즘입니다. 2월부터는 기온이 조금 오른다니 2월이 손꼽아 기다려지네요. 춥다고 집 안에만 계시지 말고 다양한 인권 행사에 참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권을 위해 함께 고민하다 보면, 어느 새 추위는 저만치 물러가 있을 거에요! 1월 4,5 주 블로거가 바라본 앰네스티와 인권 시작합니다 ^^ - 국제앰네스티 관련 포스팅 <국제 엠네스티에서 온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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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에도 불구하고 선고 내용은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2011/01/27 02:14물론 그렇지요. 이 글에 링크한 자료 참고하세요.
2011/01/27 02:22http://www.amnestydiary.net/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