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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인권이다

분류없음 2011/02/10 06:29 posted by 고은태
일단 동영상 한 편. 제목은 ‘변기의 나들이’ 정도라고 해도 될 듯 하다. 벨기에에 있는 케냐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 변기들도 출동하지만, 경찰은 변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다음은 사진 슬라이드쇼. 이 사진들을 통해 전체적인 시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중간에 변기로 인한 약간의 해프닝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롭게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게 이루어진 시위였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외교공관 앞에서 이런 시위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국제앰네스티 벨기에지부는 작년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을 맞아 브뤼셀에 있는 케냐대사관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렇다면 케냐대사관에서의 시위에 왜 변기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이날 시위의 목적은 케냐정부에게 케냐의 여성들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슬럼에서는 폭력이 여성들에게 특히 큰 피해를 입힌다. 거주자들은 위태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고, 깨끗한 물, 위생, 건강, 학교 기타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에의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화장실과 씻을 수 있는 물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은 여성들에게 더욱 견디기 힘든 환경이다. 많은 여성들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이는 어두워진 후엔 몹시 위험한 일이다. 10-15분이 걸리는 화장실에 가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강간과 폭력에 상습적으로 시달린다.

나이로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인 약 2백만 명이 도시의 주거지역 중 5%에 해당하는 땅에 밀어 넣어진 슬럼들과 비공식주거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과 기본서비스의 부족 뿐 아니라 차별과 치안부재, 주변화에 고통 받고 있다. 여성들은 집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강간과 폭력을 저지르는 자들은 갱들, 가족들, 고용주 심지어 정부의 보안요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

“젊은 사람들이 제 집으로 들어왔어요. 온갖 무기를 가지고서요. 그 중 둘이 칼을 제 머리와 어깨에 대고 소리를 내면 당장 죽이겠다고 말했어요. 전 등을 무언가로 얻어맞고 누군가에게 떠밀려 마루바닥에 넘어졌어요. 저는 두 사람이 절 강간하는걸 느낄 수 있었지만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모두 몇 명에게 강간당했는지는 알지 못해요.”
Njambi, Kibera, 15 February 2010 2)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슬럼에 경찰력은 거의 배치되어 있지 않다. 처벌을 요구한다고 해도 이런 접근은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 받는다. 가정폭력은 거의 범죄로 취급되지도 않으며 심지어 경찰 스스로가 강간을 저지르는 경우도 흔하다. 슬럼으로 떠밀려온 여성들에게는 그 어디에도 비상구가 없다.

전세계적으로 슬럼으로 분류할 수 있는 20여 만개의 주거지가 있으며,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수는 10억 명이 넘는다. 슬럼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2030년까지 슬럼의 인구가 지금의 두 배인 2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3)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지키기 어려운 불안하고 결핍된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이른 사람들일 뿐 아니라, 내전이나 국가의 폭력, 강제퇴거로 그리고 다른 인권침해들 때문에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부득이 슬럼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슬럼은, 그리고 약자들이 슬럼에 살게 강요하는 빈곤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인권침해의 결과이거나 동시에 수많은 인권침해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회가 만들어내고 확대하고 있는 슬럼의 거주자들을 외면하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70년대와 80년대의 개발광풍 속에서, 그리고 부동산투기바람을 타고 지속된 폭력적인 도시재개발로 눈에 보이는 슬럼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고층아파트들이 대신 들어섰다. 그러나 이런 재개발의 결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함께 향상된 것은 물론 아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사회는 쪽방, 고시원, 열악한 반지하나 옥탑방 등 도시 곳곳에 흩어진, 보이지 않는 슬럼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슬럼은 사회의 눈길을 받지 못한 채, 거주자들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충돌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용산참사는, 비록 주택은 아니었으나, 공간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예이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결사 항전하던 사람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들과 함께 하던 사람들은 이미 중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이제, 진상규명과 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던 용산범대위의 박래군, 이종회 두 사람은 5년4개월과 4년이라는 엄청난 구형을 받고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두 차례나 연기된 1심 선고공판이 오늘, 24일이다. 삶의 공간의 문제가 그 자체로도 인권침해이면서 동시에 생명권과 표현, 집회의 자유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용산. 부디 두 사람에게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길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이제 투기대상으로써의 부동산에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함께 기대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인권은 없다.

1. Amnesty International, Amnesty International Report 2010, 2010 : 197.
2. Amnesty International, RISKING RAPE TO REACH A TOILET – WOMEN’S EXPERIENCES IN THE SLUMS OF NAIROBI, KENYA, 2010 : 2-3.
3. 아이린 칸 저, 우진하 역. 들리지 않는 진실, 바오밥, 2009 : 188.

방금(24일 오후 2시 35분)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박래군 3년1월 집행유예 4년, 이종회 2년 집행유예 3년이라고 합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있는 형량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고, 하던 일들을 계속할 수 있고, 2심 준비에도 좀 여유가 생기겠네요.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염려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한겨레 HOOK에 2010.1.24 에 올린 글입니다.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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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슬아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이 누군가에게 폭력에 대한 두려움의 존재라는걸 알고나니, 익숙해진것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2011/02/1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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