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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런던에서 약간의 여유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날이 추우니 야외활동은 무리고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고민고민 했다. 가본 장소 중에서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가 생각났고, 안 가본 장소로는 테이트 브리튼이 떠올랐다. 많은 분들이 조언을 주셨는데, 터너의 그림도 탐나고 영국 회화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안 가본데 가보라는 이야기에 혹해서,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필리어가 있다는 말에 끌려서 테이트 브리튼으로 결정하고 출발.

지하철이 제일 편하겠지만, 추운 날씨에 눈도 좀 즐거워 보자는 의미에서 일단 템즈강까지 버스 타고 가서 거기서 템즈강을 따라가는 버스를 찾아보기로 결정.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온다. 정류장을 바꿔서 다른 버스를 기다려보았으나 반대방향만 자꾸 지나가고 여전히 안 온다. 결국 템즈강은 포기하고 빅토리아역으로 직행해서 갈아타기로 결정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 버스가 가다 보니 ‘뮤지엄 스트리트’에 정차한다. 충동적으로 내리고 말았다. 대영박물관. 사실 이름이 건방지다고 좀 말들이 있기는 한데, 영어로는 ‘브리티쉬 뮤지엄’이니 전혀 건방진 이름은 아니다. 물론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얼마나 브리티쉬 한지는 좀 의문이지만. 건방진 이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려면, 사실 잉글리쉬와 브리티쉬가 구별되지 않고 ‘영(英)’으로만 표현되는 우리의 번역어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언제 봐도 압도 당하는 대영박물관. 환상적으로 리모델링한 건물도 멋지고, 이런 대단한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점도 그렇고, 소장품을 훌륭한 방식으로 컨텐츠화 하는 능력도 엄청나다. 그러나 압도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질을 자랑하는 소장품 때문이다. 막상 자기네가 만든 건 별로 없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귀한 문화재들로 인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박물관을 거닐다 보면, 정말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런 대단한 박물관이 우리 집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선생님을 따라온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영국 어린이들이 문득 부러워졌다. 이런걸 보면서 성장하다니, 과연 문화적 감수성 면에서 경쟁 자체가 가능할까.

바글거리는 관람객들, 특히 어디 가나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주로 남성) 사이에서 그래도 집중하며 돌아다닌다. 이번엔 안 가본 3층 전시실. 그러다가 별 매력 없어 보이는 근대를 다룬 전시실에서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박물관을 가든 미술관을 가든, 전시품보다 설명에 더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읽는 문자중독증 덕분인 듯.


나폴레옹과 관련된 물건들을 모아놓은 코너인데, 사진에 보이는 건, 나폴레옹의 데드마스크. 뒤에 보이는 건 나폴레옹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 중에 핵심은 제일 마지막에 있는 문장인데, 이렇게 써있다.

그는 루브르를 전 유럽에서 약탈한 물건들로 채웠고, 프랑스 사치품의 가장 위대한 후원자 중 하나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생애에 대한 설명 끝에 절묘하게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프랑스 상품에 대한 비난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아니, 그런데, 대영박물관이 이런 비난을 할 자격이 되나? 자기네는 전 유럽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져온 걸로 박물관을 채워놓고 있으면서… 자기네 입장은 생각도 않고, 그런 비난을 하는걸 보면서 역시 대영박물관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는 박물관이다라는 생각을 잠시 하며 낄낄.

마지막으로 대영박물관을 위한 변명 사진 두 장. 물론 이걸로 면죄부가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청년의 청동상.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청동상은 후에 녹여서 재사용 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청동상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결국 청동상이 이집트로 건너갔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측면에서 서구 열강의 다른 나라 유물에 미친 긍정적 효과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진은 로마가 영국을 점령하고 있던 시절, 지금의 스코틀랜드와의 경계선 쯤의 하드리안 방벽에 위치했던, 약 천 명 가량이 주둔했던 로마군 요새의 모형이다. 이 천년 전에 이미 로마에게 이렇게 치밀하게 점령당해 있었을 뿐 아니라, 앵글로색슨 자체도 이주민이고, 이후에 노르만의 정복을 비롯하여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외래인이 통치한 나라이면서, 지금도 로마시대의 유물이 대량 출토되고 있는 나라 영국.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은 유럽. 전쟁 자체가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던 역사를 살아오면서, 과연 유물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고가 성립할 수나 있을까?

21세기가 되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보호할 능력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황에서 아직도 강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은 정당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기회에 과연 문화재의 진정한 주인을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좀 고민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무조건 우리 것이라고 하지만, 그 기준은 무엇인가. 혈통상의 조상이 만들고 소유했던 물건이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인가, 아니면 영토상으로 한반도 내에서 만들어지고 존재했던 물건이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인가. 단일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야 이 문제가 별로 복잡한 것이 아닌 듯 보이지만, 두 가지가 일치하는 국가가 전세계적으로 별로 없다는 점에서 보면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문화재의 반환은 당연히 전 세계적인 인류공통의 문제이고, 그렇다면 문화재의 반환기준 역시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 없이 그냥 막연하게 우리 것이라는 것만으로는 문화재 반환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문화재가 외국으로 강탈당하고, 그 후손이 또 다른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 문화재는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외국에 살고 있는 그 후손에게 반환되어야 하는가. 강탈되었음이 입증되는 문화재만 반환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문화재가 반환되어야 하는가. 신안 앞바다 중국 난파선에서 건진 유물은 중국에 반환되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에 대한 의견을 트위터에서 물어본 결과, 많은 분들이 당장 반환이 어렵다면 최소한 그 유물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게되었는지라도 함께 표시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임시변통이겠지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한겨레 HOOK에 실렸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며, 물론 국제앰네스티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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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모건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012/05/13 00:21
  2. BlogIcon 미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먹었습니다.

    2012/05/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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