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형제도,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이 세 가지 단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만일 우리가 속한 사회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 혹은 불가피한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여러분과 대화할 계획이지만, 적어도 이 글을 통해서는 아닙니다.

저는 이 세 가지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가름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존재란 결국 국가의 종속물이고, 이런 기반 위에서 인권을 외치는 것은 결국 부질없는 짓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사형제도, 국가가 필요할 경우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보안법,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생각은 안 되는지를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불법화, 나의 양심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국가는 필요에 따라 내게 어떤 종류의 행동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개인과 국가의 권력관계는 완전히 일방적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꽃 피었다고 해도 - 그것도 사실 아니지만 - 이런 상황에서의 선거에 기반한 민주주의란 결국 다수가 소수에게 행사하는 폭력에 불과합니다. 개개인이 존중 받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그저 왕정이나 귀족공화정처럼 의사결정을 위한 한 방편일 뿐입니다.

개인이 먼저냐 집단이 먼저냐 하는 데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의 최고 수준인 국가조차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생명과 사상과 양심이 보장될 수 없다면, 사실 국가는 그 존립근거 자체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은 국가보다 소중하며 더 기본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권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간혹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북한인권을 들먹이는 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진보적인 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좌파라고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한국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에 좀 더 우선순위를 부여해 주십시오. 언뜻 소수의 사람들만이 겪는 한가한 문제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이 집중하고 있는 다른 분야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표현의 자유가 재갈 물린 채 어떤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고, 국가적 문제만 있으면 모두가 애국투사로 돌변하는 상황에서 약자들의 어떤 외침이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개인이 없는데 소수자가 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약자의 권리를 말 할 수 있을까요? 자선 정도는 바랄 수 있겠지요.

한때 부총학생회장까지 한 선배가 한미FTA를 찬성하길래 깜짝 놀라 따져 물으니 개인이 전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가 찬 대답이 튀어나오더군요.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개인이 없습니다. 남이고 북이고 좌고 우고 오로지 전체주의와 우리편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회입니다. 지금 여기서 외쳐야 할 것은 집단이 아닌 개인입니다. 그래야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도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문제는 바로 이를 위한 결정적인 문제들입니다.

보수적인 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우파라고 해도 좋습니다.

개인과 국가의 문제는 본래 좌파가 아닌 우파의 과제입니다. 국가가 뭘 얼마나 여러분께 해주겠다고, 개인을 희생해서 국가를 고민하십니까? (진짜 기득권층은 열외입니다. 계속 충성하십시오.) 보수적인 여러분이야 말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목숨 걸고 외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땅에 양심적인 보수들은 몽땅 다 죽어버렸습니까? 촛불집회를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더군요. 상당수 참여자는 보수적인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고 내게 위험한 소고기는 못 먹겠다고 버티는 것 아닙니까? 그것 하나 가지고는 불충분 합니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우지 않는 한, 미국소고기 아마 먹게 되실 겁니다.

이제 제발 소리들 좀 내십시오. 양심적인 보수주의자의 의제들을 되찾아 가십시오. 소고기만 말고, 다른 주제에도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위의 세 가지 문제를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땅에 개인이 설 자리는 영영 없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미국에게까지 핀잔을 듣는 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위의 세 가지 문제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이에 대한 특정입장이 아니라 이 문제들이 매우 시급하고 우리 모두가 절박하게 힘을 합쳐야 하는 과제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풀리고 나면, 나머지는 훨씬 쉬워질 겁니다.

좌나 우나, 보수나 진보나, 모든 양심적인 분들은 한번 힘차게 모여서 힘을 합쳐봅시다.

이 글의 대체적인 방향은 앰네스티의 정책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맞지 않음을 일러드립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데, 다 줄이고 간단하게 써 올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 http://www.amnestydiary.net/trackback/85 관련글 쓰기

  1. [생명윤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형 제도'의 필요성_강호순과 사형 제도 존폐 문제

    Tracked from 진리의 길  삭제

    자극. 그것은 고리타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된다.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에게서 날라온 '이별 통보'는 백수에게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자극'을 안겨줄 것이다. 비만인 사람에게 있어서 친구들이 심심찮게 날려주는 '조롱'은 '살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그를 자극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심각한 '전쟁 불감증'에 걸려 있다. 우리는 전쟁의 위험 속에 살면서도, 전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태평하게 살아가고..

    2009/02/22 17:5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nooe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심'이란 말, 앞으로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양심을 팔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봤을테니까요.

    2008/09/26 22:16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양심이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는 굉장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보니 불행히도 양심이 제 자리를 못찾고 있죠.
      언제 한번 양심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죠?

      2008/09/27 19:24
  2.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8/09/26 22:23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고쳤어요... 너무 늦었나?
      암튼... 늦게라도 고치는 쪽이...
      안그래도 쫌 그랬거든요, 쓰면서도....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2008/09/27 19:22
  3. BlogIcon JJangKun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서 진정한 '자유'는 거세된 채 시장에서의 자본만이 자유가 된듯해요.
    부디 '돈만 중요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9/29 01:42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그렇죠... 돈 말고 다른 것들이 소중히 여김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건지...

      2008/09/29 09:52
  4. 이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공감가네요. 저도 이런 글을 쓴적이 있는데...데헷.
    http://blog.naver.com/ands9015?Redirect=Log&logNo=130035409417

    2008/11/18 22:53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가서 읽고 왔습니다.
      심각한 주제를 참 읽기 좋게 잘 정리하셨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1/22 00:44

◀ Prev 1  ... 431 432 433 434 435 436 437 438 439  ... 499  Next ▶

카테고리

전체보기 (499)
지부장 일기 (188)
사무국 일기 (6)
회원 일기 (74)
문화생활 (28)
앰네스티 공식자료 (12)
블로그 블로깅 (17)
  • 370,097
  • 65216

Amnesty Diary: 앰네스티 일기

고은태'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고은태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Amnesty Diary Blog is powered by Tistory | 관리자 |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