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은 공공재입니다. 일단 개선되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봅니다. 그러나 개선을 위한 노력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소수의 희생 위에서 전혀 희생하지 않은 사람도 그 과실을 함께 누립니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들까지도 덩달아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사람들일수록 민주주의와 인권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즉 남용과 오용의 경우가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희생이 없었으니 아까울 것도 없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니 소중히 할 이유도 없겠지요.
지금의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영국에서 머물던 친구가 보낸 엽서의 한 구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도 와보니 또라이의 비율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다만 또라이들이 설치지 못하게 하는 사회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다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격한 민주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한국상황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겠지요.
많은 분들이 - 특히 진심으로 희생한 많은 386세대들이 - 이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라 해도 사회 어느 구석에서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한번쯤은 똑 같은 고민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자, 그럼 과연 민주주의와 인권은 그 공공재적 성격 때문에 만인의 호구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들이 더더욱 설치는 꼴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것이 필연이려니, 민주주의와 인권의 마땅한 부작용이려니 포기하고 살아야 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또,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와 관련한 국제적 기준들을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와 인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권에 관한 가장 기본문서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인권선언은 그 마지막 30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인권이 인권을 위협할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용과 오용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인권을 일단 침해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권을 침해한 범죄에 대해서만큼은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고,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개별국가의 법률조항이 어떠하든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은 각 국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민주화 과정에서 실수한 것도 바로 이 두 부분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오히려 이를 위협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지 못한 것, 그리고 과거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노력은 있었지만, 그 노력은 힘에 부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잘못된 관용정신을 보인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들에 대한 처벌과 이들의 행동을 제도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나 인권에 반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조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필수적인 조처임을 국제적 인권기준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지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다시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는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적절한 방어장치 없이는 어떤 민주주의나 인권도 스쳐 지나갈 한여름 밤의 축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번 기회를 놓쳤지만, 정말로 아프게 가슴 속에 깊이 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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